공감 할 수 있는 아름다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작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기술적으로나 조형적으로 완전함에 있다.

우리나라의 청자가 완성의 미 라는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힘은 당시 고려 미술 전반에 걸쳐 이룩되었던 수준 높은 미의식(美意識)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통일신라시대부터 발전해 온 금속가공기술과 나전(螺鈿)기술 등각종 최고의 공예기술문화는 양적인 것보다 질적으로 더욱 발전하여 고려의 공예기술은 섬세한 기교를 바탕으로 닦고 다듬은 세련된 미의 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다.

고려의 공예기술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청자이다.

그러나 청자뿐만 아니라 다른 공예기술인 금속가공, 조각, 회화와정교함의 극에 달한 불화 등이 함께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미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청자의 대표적 특징인 비색(翡色)은 고려사회의 정신세계를 표현한것이며, 세련된 조형미는 오랫동안 닦고 다듬어 온 금속기의 조형적 전통을 청자로 승화시켰던 결과이다.

또한 세계 도자사를 풍요롭게 하였던 상감기법의 창안과 유행은 섬세한 기교를 바탕으로 밀도가 높은 아름다움을 구사하려 했던 결과이며, 산화동을 안료로 한 붉은 색 진사(辰砂)기법의 발명도 이러한 창조적 배경에서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결과였다.

고려시대의 이규보는 아름다운 녹색청자잔은 열 중에서 골라 하나를 얻을(揀選十取一) 만큼 어렵다고 하며, 그 솜씨는 마치 하늘의 조화를빌린것(似借天工術) 이라고 하여 청자의 완성미를 노래하고 있다.

또한 중국인들도 천하제일 이라고 표현한 것, 그리고 현대인이 신(神)의 손길 이라고 말한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공감할 수 있는 청자의 완성미(完成美)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세계 도자사 8천년 역사에서 청자 중심시대 라고 부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청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의 경우 청자다운 청자를만든 기간은 남북조시대부터 원대(元代)후기(14세기중반)까지 약 10세기 동안이며,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 후기(9세기중반)부터 조선시대 전기(16세기)에 이르는 7세기간이다.

13세기경 남아시아 일부에서 청자와 유사한 시유도기(施釉陶器)를 만든 예는 있지만 본격적인 자기질(磁器質) 청자는 만들지 못했다.

가까운 일본도 청자문화를 독자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17세기경에 비로소 백자문화에 편입되었다.

물론 서아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경우 자기질 청자문화는 상상할 수도없었던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청자 라는 의미 뒤에 중국과 한국 이라는 두 나라를연상하게 되는 것이며, 결국 이 두 나라의 청자문화가 전개되면서 14,15세기경 청자에서 백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다시 확산하는 과정에서일본, 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지역, 서부유럽까지 널리 퍼졌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청자문화의 향유국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술의 습득은 물론 청자를 제작하고 사용할만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지녔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과 다른 창조적 역량의 발휘와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의미에서도 정말 뜻 깊은 일이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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