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수사를 하면서 5공 시절에나 있을 법한 고문을 했다고 하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벌어진 피의자 가혹 행위는 소위 '날개 꺾기'와 '재갈 물리기' 등 5공 시절의 고문행위와 같았다는 것이다. 8년전 검찰 수사관들의 피의자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과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가혹 수사 사건들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고문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다는게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같은 고문 수사는 실적 경쟁에다 밀실 수사가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선 경찰서 강력팀의 사무실과 조사실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양천서 등 일선 경찰서를 둘러본 결과 지구대에서 접수한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팀은 보통 형사과장실, 형사지원팀 등과 함께 본관 1층에 자리하고 있지만 강력팀은 별도의 건물 또는 지하에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고문 수사가 들통난 양천서 강력팀은 본관 건물 뒤편에 마련된 신관에 있어 다른 직원이나 민원인이 오갈 이유가 없는 폐쇄된 곳이었다. 각 방은 항상 잠겨 있고 창문도 굳게 닫혀 내부 상황을 알 길이 없다. 강력팀 조사실 내부에 cctv가 있지만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 수사관들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2002년 일어났던 서울지검 강력부의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은 11층 특별조사실이라는 밀실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외진 곳에 별도로 둔 조사실이나 사무실은 내외부 감시가 가능한 곳으로 옮기거나 개선하여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밀실은 고문이 자행될 소지를 안고 있다. 차제에 경찰의 폐쇄적인 강력팀 운영방식도 확 뜯어고쳐 등잔 밑이 어둡지 않도록 해야 할것이다.

피의자들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지난 3월 9일 부터 4월 2일 사이 경찰서 상황실내 폐쇄회로의 영상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사실도 문제이다. 경찰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문 의혹의 결정적 증거물이 사라진 셈인데 이에대한 조사도 병행돼야 할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양천경찰서 고문의혹 사건과 관련해 "어떤 이유로든 수사과정에서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며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법집행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고 "국민의 인권이 무시되는 상태에서는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이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찰, 검찰 등과 같은 법집행 기관은 어떤 이유로라도 국민의 인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관의 가혹수사는 반 인륜적인 행위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돼야 한다. 증거에 입각하여 과학적인 수사로 범죄를 증명하는 것이 수사기관의 임무이다. 고문에 의한 억지 자백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 한다면 죄없는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 있다. 죄를 지으면 마땅이 처벌을 받아야 하나 처벌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혹행위가 동원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가혹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경찰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도 이에대한 대책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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