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전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니 이끼 묻은 일기장을 들춘다. /당신 생각하면 가슴이 짠한지 이름 하나 붙들어둔 흐릿한 기억으로 그 무엇이 떠오르는지 /마루에서 몇 뼘 쯤 산봉우리에 뿌연 안개 자리하고 /천연덕스럽게비를 멈추지만 여전히 꼲기 어려운 이야기와 만난다./어쩌나 어쩌려나 궁리하다가 요즘 일기 서너 쪽을 고쳤다./ 필자의 시'일기장 수선' 중간 부분이다.남아공월드컵이 더위를 얼려주고 있다. 비록 공격 점유율을 앞세우고도 골운이 따르지 않아 우루과이에 8강 진출 티켓을 내주었지만, 경기내내 스스로를 날리다시피 그라운드를 누빈 태극전사에게 격려의 박수와 함께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 일본도 우리 뒤를 바짝 따랐다.사실, 갑자기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느낌으로 섬뜩했다.일본축구의 부활은 예보가 어두운 극적상황였으니까. 2006 독일월드컵에서 토너먼트 진출팀을 배출하지 못했던 아시아로서 이번 성과는 ´자존심´으로 뜰만하다. 목표가 4강이라던 건방진 오카다 감독의 말이 우리에겐 귀에 박힐리 없다. 역사적 애증인지 몰라도 기분은 여전히 떨떠름하니 어쩌랴. 승부차기로 파라과이에 패한 일본. 비록 잠깐이었지만 왜인(倭人)들 함성에 괜시리 짜증나고 열받았다. 독도를 두고 네것 내것을 구분 못한채 간교한 야욕에 변화는 커녕, 월드컵 축구까지 똥강아지처럼 붙는 게 싫다. 절로 배어난 정체성일까? 유독 뜨거운7월로 숙성된다.

아름다운 도전

요즘 학교에서는 방학준비로 바쁘다. 느슨했던 아이들 발걸음은 날개단듯방학 꿈에 들떠 있다. 동심의 세계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꾸밈없어 좋다. "선생님! 이번 방학엔 천안함 참사현장인 백령도를 가고 싶어요. 저는 독도를 다녀올 거예요" 어눌함을 애써 혼자 삭히려 하지 않고 곧장 나오는 대로 뱉는다. 아이처럼 귀하고 예쁜 게 세상 어디 또 있을까?방학계획 대부분은 부모의 원격 조종에 의한 로봇형도 많아 한마디로 아이들 생각을 찾기 어렵다. 책상은 지키지만 공부와는 달리 엉뚱한 잡념이 늘어간다. 어느 부모건 자녀를 위해 지독한 스폰서다. 그러나 아무리 초고속 시대라 해도 어린 시절에 채워야 할 것은 시기를 놓치면 어려워진다. 이리뛰고 저리뛴 만큼의 성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외형상 풍요로운 세상인데 정신건강은 바닥이다.부모 계획대로만 자녀가 묶여지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생활로는 창의나 자기주도적 밑그림을 그리기 힘들다.스스로를 주체하며 가꿔야 할 적당한 여백이야 말로 방학이 최적 아닌가? 내가 어렷을 적 전쟁놀이로 방학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국가안보와 맞물린 시대적 흐름같다. 적군과 아군으로 나눠 일단 규칙을 정해놓고 싸움이 시작된다. 둑과 너른 모래벌판 그리고 냇물이 흐르는 전장에서 가장 힘든 건 "두두두두 따따땅,펑-"총소리와 수류탄 소리 모두 육성으로 내야했다. 한번은 너무 일찍 전사하여 놀이가 끝날 때까지 한시간 가깝게 죽은 척하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결코 잊지 않겠다던 천안함 수병들의 희생이 생각난다. 백령도로 떠나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애국이란 낱말쯤 새겨보고, 독도 탐방으로 일본인 속셈까지 캐내는 아름다운 도전 역시 소중한 방학사례다.

부모가 먼저 차가워져야 힘든 일에 처했을 때 보석같은 사람이 있다. 참으로 의지가 굳고 주위를 잘 챙겨온 사람일수록 난관을 슬기롭게 넘긴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기름진 뉴스 생산의 고수 아니던가? 남아공월드컵 축구도 마찬가지다. 큰 고비를오히려 격려와 재충전으로 싸안은 태극마크 리더 허정무에게서 덕장의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전, 박주영 김남일의 실수로 경기장 밖은 얼음보다 냉냉했을 때 조금도 약함을 비치지 않았다. 마치 맏형처럼 표정관리가 먼저였고 벌써 다음 경기 출장 컨디션 조절에 집중했다. 아랫목 같은 온기를 지펴 외유내강의 덕장으로우뚝섰다.말처럼 쉽지 않은 게 리더십이 어디 축구 뿐이랴. 축구장 밖 세상 역시 다를 바 없다.

마인드 치유

학부모 교육 중 '방학 무용론' 제안을 들었다. 간단한 이유였다.부모로서 달포이상 돌보기가 버겁다는 얘기다. 방학은 의미 그대로여야 한다. 교실보다 더 너른 공간을 무대로이삭이 배어 벼가 돼가는땅심도 체험하며, 쑥대로 지핀 모깃불 곁에 오순도순 모여 이웃끼리 사촌 되는 나눔의 시간들로 익어갔으면 좋겠다. 새벽시장도 데려가 힘든 삶의 현장도 부대끼고 봉사와 헌신 아니면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곳을 찾아 음지와 양지를깨닫는 일 까지. 스스로 세운 계획아래 즐기다보면 아니다 싶은 부분과 자신이 강화해야할 책임감도 불어난다.누가 자녀 몫을 하나에서 열까지 원격 조정하랴. 문제는 마인드의 치유다, 우린 황당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많이 뜨거워진다. 얼어봐야 더 뜨겁다. 부모가 먼저 차가워질 때 자녀들은 비로소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런지.

▲ 오병익 청주교육청학무국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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