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7년 3월 23일

나랏일을 보는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에 뜻을 둔 한 정치인을 험한 말로 비난했다고 한다. 그것도 국사를 논하는 국무회의에서 그랬다니, 참 딱한 노릇이다.

대통령이라고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때와 장소, 말의 품격은 가려야 한다.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써 국무위원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보따리 장사 운운하며 특정 정치인에 대해 막말은 한 것은 보기 흉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 석상에서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며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보따리 장사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거친 말까지 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특정인을 지칭한 게 아니라고 했다지만, 누가 봐도 전날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겨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좋은 말도 표현이 거칠면 비난으로 들린다.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노 대통령의 말은 맞다. 우리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정도가 아니라고 지적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불필요한 말을 더함으로써 감정 섞인 비방으로 들리게 했다. 스스로 대통령다운 품위를 잃은 행동을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비판한 의도도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대선 정국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유지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풀이다. 범여권 일각의 손 전 지사 영입 추진을 경계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 내 추가 탈당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 한다는 것이다.손 전 지사가 현 정부를 무능한 진보라고 공격한 데 대한 반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모두가 대선 구도와 관련된 것들이다. 노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옳다. 노 대통령이 대선 구도에 발을 담그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보따리 장사 손 전지사의 말처럼 "대통령께선 정치평론은 그만하고, 민생 걱정 진지하게 해줬으면 한다"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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