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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촌지를 받았다
김미혜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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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10.19  18: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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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빼꼼이 열리더니 정적이 흐른 채 더 이상의 인기척이 없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봤더니 캠퍼스에서 자주 뵐수 없는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문 밖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누구세요?"혹시 잡상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딱딱한 어조로 질문을 건네었다. "저... 여기가 혹시 대학교 교수님이 계신 곳이 아닌가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정중하게 말을 건네며 할머니는 연구실 안으로 몸을 들이 미셨다.

" 안녕하셔유, 우리 손주가 여기 학교에 다니는디, 교수님이 가르치는 학생인 것 같은디....."

그랬다. 할머님의 손주는 내가 가르치는 강좌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 중 한 명이었고 할머님은 학내 미화를 임시로 담당하시는 분이셨다. 간혹 복도를 지나가거나 혹은 강의실에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찾아오셨던 게다.

그런 일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할머님 친구 분이 아프셔서 대신 며칠 동안만 임시로 학내 미화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어릴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교통사고 고아가 된 손주가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내년에 취직하면 할머니께 맛있는 것 많이 사드리겠다는 손주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다. 어렴풋한 내 기억으로도 할머님의 손주는 눈이 띄는 학생은 아니지만 수업에 열중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많이 힘들어 하면서 잠을 설치고 어느 날은 혼자 우는 걸 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너무 커서결국 내 방문을 두드리시게 되었다는 걱정을 열어 놓으셨다. 할머님과 만난 며칠 후 나는 다른 일을 핑계 삼아 학생을 만났고 최근의 고민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압박받는 상황에 있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매 번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그 학생을 통해 할머니의 모습이 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기 위해 나는 희망을 가지라는 추상적인 말만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에게 뿜어내는 일이 고작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에 힘겨워했던 괴롭고 미안했던 시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종강을 맞이하고 방학을 보내던 무렵에 할머님은 다시 한 번 내 방을 찾으셨다. 아이가 취직을 해서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로 내 코끝을 찡하게 만드셨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제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손주가 열심히 생활하는 좋은 학생이라서 취직된 것이라고 진심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게 가장 밝은 표정으로 축하해드렸다. 할머님은 속 주머니에서 부스럭 거리며 뭔가를 꺼내시더니 조용히 내 앞에 내밀어 주셨다. 다섯 번도 넘게 접어 지우개만큼 작고, 아주 오랜 시간 할머니 속주머니에 있었을 법한 만원짜리 한 장을 펼치시면서 말이다. 언젠가 한 번은 손주를 가르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고맙다고 이런 것 꼭 한 번은 드리고 싶었다면서 ... 그 순간 나는 천 가지도 넘는 생각들이 마구마구 지나갔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짧은 순간에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처음 해 봤던 것 같다.

" 할머니! 이거 무리하셨네요, 감사합니다." 결국 손주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이 이겼다. 할머님은 사실 조금 무리하긴 했다고 하시면서 구부정한 어깨를 곧추세우셨다. 얼마 후 나는 할머니의 손주를 만나 구두상품권을 건네 주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독지가 한 분이 성실하게 수업받고 취업이 된 학생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여 자네가 선택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명분을 달아서 말이다. 학생은 수줍게 미소를 내 방 가득 뿜어내고 사라졌다.

여러 해가 흘렀는데도 그 날의 할머님의 마지막 미소가 가끔은 가을공기와 함께 나를 감싸곤 한다.

▲ 김미혜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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