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지만 서민들에게는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백화점 매출액이 사상 최고의 증가세를 보이는 등 소비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떠들지만 그것은 돈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도한 재정투자는 돈 가치를 떨어뜨려 벌이가 한정되어 있는 서민들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시중에 풀린 대부분의 돈은 대기업과 부자들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돈이 돈을 빨아들이는 금융시스템 때문이다. 서민들 사정이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미덕이 돼야 하겠지만, 정치권이나 정부, 대기업 모두 서민생활 활성화에는 큰 관심이 없는 눈치다. 내년도 예산국회마저 결식아동을 위한 방학 중 식비지원이나 장애인 지원예산 등은 빠뜨렸다는 보도이다.

5년 전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로 고통을 겪고 있는 태안군 주민들의 각종 질병치료를 위한 예산도 모조리 삭감되었다고 한다. 반면, 기름 유출과 관련된 대기업체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기름사고로 피해를 본 어민들에 대한 보상은 기한도 없이 지연되고 있지만 해당 기업의 임직원들은 연말보너스 잔치를 상상하며 들떠 있을 것이다. 늘 부자 편에 서 있는 정치집단과 관료들이 서민들 어려움에 얼마나 매정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슈퍼마켓으로 동네상권마저 장악한 한 재벌 유통업체는 급기야 감추고 있던 야수의 발톱을 보란 듯이 드러내고 있다.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저가 치킨장사에 나섬으로써 동네 치킨가게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영세 상인들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며칠 전 충북 충주가 고향인 제자 한명이 연구실을 찾아왔다. 그 학생은 내년도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부모님께서 학교를 그만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 벌이로는 3남매를 모두 공부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보다 못한 어머니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 일을 나가 한 달에 백만 원 월급을 받아서 보태고 있지만 생활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도 겨울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취방 구할 돈벌이에 나설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의 소득이 없는 계층이 10%를 넘어서고 있고, 그에 따라 절대 빈곤층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력이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는 부자들에게만 몰리고 있다. 갈수록 부자들은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도 더 큰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있다. 분배보다는 경쟁을 중시하다보니 서민들의 어려움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로부터 국가에 대한 존경심이나 신뢰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자존심의 상실과 절망, 그리고 분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병들어가면서 계층 간 갈등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경쟁이라는 미명아래 본질적으로 계층화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빈곤층의 증가와 이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무관심은 건강한 사회를 위협하는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빈곤계층이 정신적으로나마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신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빈곤층이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인식과 나눔의 미덕이 실천됨으로써 가능하다. 혹자는 나눔이 나태를 불러온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매우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비가 안 되는 저소득에 시달리는 계층이 증가하고 있고, 취업해서 일하고 싶지만 구조적 모순 때문에 실직상태에 있어야 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권력가와 부자들의 욕망만을 더 충족시키는 데 용이한 사회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빈곤계층의 소외를 불러오고 그것은 분열과 혼란의 씨앗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안상윤 건양대학교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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