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탄생 축하 의식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 날은 그리스도 탄생 기념일이자 전 세계적인 공휴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탄생 축하 의식은 3세기에 들어와서부터 행해졌다고 한다. 게르만족과 켈트족 등이 봄을 기다리며 벌였던 축제가 그 기원이라는 크리스마스, 이때 모닥불과 양초를 켰었다. 그때 형식의 일부가 남아있어 세상(어둠)을 밝히는 양초(빛-하느님의 아드님)가 제 몸을 태워 빛을 발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교에선 오늘날에도 양초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어린 날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으로 양초 같은 여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속눈썹이 긴 커다란 눈, 웃을 때마다 희디흰 얼굴에 볼우물이 깊게 패이던 순희 언니, 그녀는 내가 살던 시골 소읍의 미장원 종업원이었다.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성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고아 출신이라는 그녀는 우리가 그곳에 들릴 때마다 살갑게 대해줬었다. 불꽃이 시퍼렇게 피어오르는 연탄난로 속에 머리 인두(일명 고데기)를 꼽았다가 빼내어 뜨거운 그것으로 마을 여인들의 머리를 능숙하게 볼륨을 살릴 때면 어린 눈에 그게 무척 신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 앞 논바닥에서 얼음을 지치다가 손발이 꽁꽁 얼면 동네 조무래기들은 곧잘 미장원을 찾았었다. 그리곤 주인 여자의 따가운 눈총도 아랑곳 않고 연탄난로 앞에 모여 앉아 언 손과 젖은 옷, 양말 등을 말리곤 했었다. 어느 날 앞 못 보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영남이가 자신의 젖은 양말을 연탄난로에 말리다가 그만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 당시 나일론 양말은 참으로 귀한 물건이었다. 이에 속상한 영남이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러자 순희 언니는 좀처럼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영남이를 달래기 위해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영남이에게 양말 한 켤레를 꼭 사주겠노라고.

하지만 그 날 이후 어인일인지 미장원에서 순희 언니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주인여자에게 흠씬 매를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을 귀동냥 해보면 순희 언니는 여러 해 째 월급이라곤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장원 주인은 순희 언니에게 그곳일은 물론 자신의 집안일까지 뼈 빠지게 시키는 노동 착취를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처지다보니 순희 언니가 주인 여자의 돈을 슬쩍 하다가 쫓겨났을 거라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했었다.

순희 언니가 마을 미장원에서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드디어 흰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 앞에서 영남이를 찾는 여인이 있었다.얼핏 봐도 전과 달리 병색이 짙은 남루한 옷차림의 순희 언니였다. 그녀 손엔 영남이에게 줄 알록달록한 색깔의 양말 한 켤레가 소중히 들려있었다.

/김혜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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