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대 진학이 지상과제

이제 때가 됐다. 웬만한 학교, 특히 고등학교 건물이나 교문 위에 낯익은 현수막들이 걸릴 때다. 어느 대학에 몇 명이 합격했고, 특히 일류대학으로 불리는 몇몇 대학에 얼마나 진학했는지 자랑하는 현수막이다.

현수막에 쓰여지는 학교도 한정돼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로 불리는 일류대학과 서울 소재 대학은 빠지지 않고 한참 잘 나간다는 (한)의과대학은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어디를 따지지않고 걸린다.

문제는 이렇게 이름이 걸리는 학생은 몇몇에 불과하다는 거다. 보통 1년에 300명 안팎 졸업하지만 현수막에 나붙을 정도의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극소수다.자연 나머지 학생들은 뭐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일류대 진학이 지상과제

가뜩이나 아쉽고, 석별의 정이 넘쳐나야 할 졸업식장도 이 현수막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분을 잡친다. 날씨도 1년 중 가장 추워 몸과 마음이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드는 2월달인데 이런 풍경까지 해마다 빠지지않고 연출되다보니 아예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까지 나온다. 자기네들이 무슨 들러리냐는 것이다.

하기야 학교 측으로서는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을게다. 인성교육이 어떻고, 전인교육이 어떻다는 고리타분한 얘기는 그만 두고 일류대에 몇 명이나 진학시켰느냐가 그 학교의 실력을 상징하는 요즘의 세속적 교육현실 속에서 뽐내고 싶을 것이다. 그걸 통해서 다른 학교와 차별을 두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학부모들도 한 몫 거든다. 어느 학교는 sky에 몇 명 보냈고, (한)의대에 몇 명이나 합격시켰는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학교 서열을 매긴다. 차라리 전체 졸업생 중 몇 명, 몇 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했느냐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오로지 sky, 일류대에 목을 건다. 이렇다보니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이 자기 적성에 맞춰 합격선이 조금 낮은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가고 싶어도 일류대 진학 실적을 지상과제로 삼고있는 학교 측에 의해 생각지도 않았던 일류대 다른 학과로 방향을 튼다. '묻지마'진학인 셈이다.

이런 세태를 바라보는 고등학교 3학년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렇지않아도 대학 진학 때문에 지나온 3년, 아니 모든게 대학으로 통하는 우리네 현실을 놓고볼 때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12년을 밤잠 안 자가며 책과 씨름해 온 판에 막판 일류대 진학 결과만을 따지는 현수막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올바른게 뭔지 헷갈리는 교육

그것도 평소 "공부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 돼라"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바른 인성이 우선이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하던 학교가 그러니 도대체 뭐가 올바른건지 헷갈린다. 그래서 정시모집 기준으로 한 학생이 가, 나, 다군(群)에서 1개 학교씩 3번의 원서를 낼 수 있는만큼 적성과 학과를 찾아 지방 소재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경우 가지 않더라도 서울권 대학을 지원, 현수막에 이름을 걸고 말겠다는 오기까지 불러일으킨다.
이제 소수의 몇 명보다 대다수를 고려하는, 말 그대로 전인교육이 절실하다. 일류대 진학 실적에 발이 묶여 교육현장에서 학교 스스로 인성교육을 저버리는 행태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이참에 참교육을 주창하는 전교조(全敎組)에서 일류대 진학 실적 현수막 걸지않기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교육 실천은 가까운데서부터 시작한다.

/박광호·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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