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손현준·충북의대 교수

사람의 목숨 값이 얼마냐 하는 문제는 의학에서 보다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재해나 사고같은 경우 적용하는 죽은 목숨에 대한 보상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른데, 남은 기대수명동안 벌어들일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음에 대한 책임, 즉 고의성이나 과실의 정도에 대한 논란은 별도로 따져야 할 일이고,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죽은 목숨에 대한 보상 기준은 비교적 단순하고 쉽게 합의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 값은 어떨까?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인질 전원의 구출 소식이 알려진 후 그동안 쓴 비용에 대한 논란과 그 비용 전액을 소속 교회에 물려야한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뜨거웠다.

&amp;amp;amp;amp;quot;나라에서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헌법소원을 불사하겠다면서 저질러 놓고.. 서해 교전에서 순국한 장병의 목숨 값이 얼마였는데... 세금이 아깝다... &amp;amp;amp;amp;quot;등 구출 소식 이전에는 누르고 있던 공분이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값에 대한 우리사회의 기준이 있을까? 도대체 얼마 이하이면 살려야 하고, 얼마 이상이면 포기해도 되나? 그런 기준이 있을리 없지만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소아과 교수와 우리나라 의료보장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의료급여가 매우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출생 12만 명 당 1 명 꼴로 나타나는 매우 희귀한 유전성 대사질환인 헐러병(huller's disease)이라는게 있다. 점액다당류를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세포내에 축적되는 것이 문제인 병이다.

다행히 그 효소는 약으로 나와 있는데 약값이 한 달에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 그냥 두면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약을 쓰면 악화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지만 그 전에 이미 손상된 기능을 회복할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이 병 뿐 아니라 의학적 대책이 알려진 희귀난치병 환자 모두(10만 명 이상)에 대해서 치료비를 전액 보조하고 있다. 희귀난치병질환 뿐 아니라 경제적 약자를 위한 의료급여 예산은 년간 4조 원 이상으로 보건복지부 예산의 30% 정도에 이르고 있으며 유럽의 복지국가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화씨911'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신작 '식코(sicko)'는 의료보장이 취약한 미국 국민 40%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만약 그가 알았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의료보장 제도를 크게 부러워했을 것이다.

영화에는 치료비가 겁나서 자기 살을 직접 꿰매는 사람이 나오고, 동네병원과 보험회사가 계약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경련하는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다가 죽게한 엄마가 분통을 터뜨린다.

뿐만 아니라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부랑자 수용소 근처에 몰래 내려놓는 유명대학 병원들의 실태를 보여주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안도했다.

자료에 의하면 2005년 한 해동안 가장 많은 진료비 혜택을 본 국민 1인에게 들인 돈은 13억9500만 원이라고 한다. 어느 광역시에 사는 30세 남자인데 이 역시 유전성 희귀병인 일종의 혈우병을 앓고 있다.

이사람도 살기위해서는 수백만 원 하는 주사를 사흘 간격으로 맞아야 하고 정기적인 수혈도 필요하다. 이 사람이 앞으로 얼마동안 오래 이런 치료비를 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정부는 계속 돈을 내야한다.

우리 국민이 살아있는 생명의 가치는 무한히 크다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중시하는 이 정부의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높게 인정하고 감사하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이른 상황에서 테러세력과의 직접협상이 옳았느냐, 국정원장이 방탄복을 입고 진두지휘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 테러에 대처하는 국제질서의 원칙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전원 석방의 기쁨에 들떠서 국정원장이 행동이 가벼웠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런 경험적 반성도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이 정부의 가치와 노고를 칭찬해주면 좋겠다.

단 이틀 만이라도 우리가 생명을 구출해냈다는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의 가치와 그 존귀함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면 좋겠다.

손현준&amp;amp;amp;amp;middot;충북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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