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至尊)이나 극존(極尊)이란 말은 봉건사회 임금을 높여 부른 말이다. 더 이상의 존귀함이 없다는 뜻이다. 왕의 명령을 어명(御命)이라 했고 그가 내 뱉는 말은 교시(敎示)라 하여 기록되고 신하나 백성들의 훈육과 이행의 지표로 삼았다.

임금의 글씨 어필(御筆)이 하사되면 백성은 이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 각(閣)을 짓고 금석(金石)에 새겨 대대로 가보로 삼는다.아무리 죄 없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고 자진(自盡)케 할 수 있었다.

지존의 명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으며 절대적 충성이 강요됐다. 혹 목숨을 걸고 임금을 보호하면 충훈록에 이름이 올라 수대에 걸쳐 부역이 면제됐으며 명망있는 문인들을 시켜 칭송하게 했다. 충신의 아비는 죽은 자라 해도 벼슬을 높여 주었고(贈職) 그 자손은 음직(蔭職)제도에 의해 과거를 거치지 않아도 관직에 임용했다.

역모나 반역 무리들은 죽거나 심지어 9족이 멸문 당한다. 머리를 베는 효수형보다 수십 배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죽은 자의 시체를 다시 발굴하여 시신을 도막내는 부관참시나 사지를 마차에 매달아 찢는 거열형(車裂刑)이 집행되었다.

고대 중국 진대의 재상 상앙(商?)은 혹법(酷法)의 집행자로 유명했던 인물. 진나라의 융성과 천하통일의 기초를 이룩한 장본인이었다.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영웅이면서도 역적으로 몰려 저자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해졌다. 임금은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반대파를 처절하게 제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왕의 시대에도 지존을 폐하거나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봉건사회의 참으로 절묘한 '정반합' 논리다. 이 이론을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이 터주었다. 논어 제12편 '안연(顔淵)'에 나오는 대목을 음미해 보자

'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맹자에게 제 선왕(齊 宣王)이 신하가 그 임금을 죽여도 좋으냐고 물었다. 그때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지인(殘賊之人)을 일부(一夫)라 합니다. 일부(一夫)에 불과한 주(紂/폭군 商의 마지막 임금)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즉 인을 해치고 의를 해치는 제왕은 폐위해도 합당하다는 사실을 극명히 한 것이다.

공길은 연산군때의 광대. '이(爾)'라고 하여 공길의 일생은 몇 년 전 소설로 오페라로 혹은 영화화 되어 화제를 뿌린바 있다. 왜 광대의 비극에 이 시대 젊은이들이 열광한 것일까. 연산군일기에 기록 된 다음과 같은 공길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길은 임금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갈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겠나이까"

천민 공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훈민정음으로 된 논어를 익힌 때문. 격노한 연산은 그래서 진 시황의 분서갱유를 방불한 한글 서적 소각어명을 내린다. 임금답지 못한 연산은 결국 신하들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교수협회가 2011년 새해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선정했다고 한다. '민귀군경'은 맹자 '진심' 편에서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글.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 된 대통령의 자리가 가볍거나 낮다는 뜻은 아니리라.존경을 받는 귀한 자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민권이나 민의에 비교하랴. 국민들을 귀하게 섬기고 사랑하는 통치력이 강하고 귀하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재준 언론인ㆍ前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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