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할까' 궁금해하며 생각의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철학이지요." 국내 최고의 무협 작가로 꼽히는 좌백(左栢.42.본명 장재훈)이 청소년을 위한 철학 소설을 내놨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감수를 거쳐 내놓은 철학판타지 소설 1,2권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와 '소크라테스를 구출하라'(이상 마리북스刊).

주인공 지누와 애지의 긴장감 넘치는 모험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보여줘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원리를 깨우치도록 돕는 책.

그런데 무협 작가가 철학 소설이라니. 2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그를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원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데다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청소년 문학사이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평소 청소년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출판사측의 제안으로 4년 전부터 집필에 착수했습니다."

스스로의 설명처럼 좌백은 숭실대 철학과 출신으로 선동열 방어율 수준의 학점이 수두룩 했던 당시 4.5 만점에 4.0이라는 '전설적'인 학점을 받으며 인문대를 수석 졸업한 철학도였다.

경제적 사정으로 졸업 후 취업의 길을 택했지만 강압적인 조직문화와 쳇바퀴 돌듯 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다 무협 출판사의 공모에 당선되자 무협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 '대오도'로 데뷔한 그는 '생사박', '혈기린외전', '비적유성탄' 등 실존주의적 느낌이 강한 무협소설 9종, 40여권을 선보였다. "죄다 주인공이 실존주의적인 고민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지요."

이런 그에게 무협 비평가인 전형준 서울대 교수는 '실존주의 무협 소설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그렇지만 무협 소설 독자층이 한정돼 있다보니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써도 판매부수는 1만부를 넘지 못했어요. 그걸 한번 벗어나보고 싶은 생각도 '외도'에 한 몫을 했죠."

하지만 청소년을 위한 철학소설을 쓰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철학의 기본이 되는 논리학부터 그리스 철학, 동양철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철저히 공부한 그 내용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뒤따랐다.

"너무 쉽게 풀면 뻔한 이야기가 돼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풀면 안읽힐 것 같고 딜레마였죠. 4년 동안 작업을 하면서 살이 8㎏이나 빠졌습니다."

좌백은 "철학은 어려운 말을 늘어놓거나 미래를 점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라면서 "이 책을 읽고 청소년들이 철학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아 너무 즉물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릴 때부터 깊이있게 생각하고, 옳은 것을 찾아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아이들이 진로를 정할 때 갈팡질팡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돼있지 않아서겠지요. 논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철학입니다."

그는 10권으로 기획된 철학판타지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책 '제자백가를 격퇴하라'도 연내 선보인다.

"3권까지 끝내면 철학의 기본이 되는 논리학부터 동·서양 철학의 탄생까지 훑는 것이지요. 욕심같아서는 중세철학, 근대철학, 형이상학 등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10권까지 시리즈를 책임지고 싶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한편 그는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무협 소설도 다시 쓰기 시작해 내년에는 중국소림사의 120살의 무술 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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