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구제역. 그로 인해 감염되었거나 감염가능성 있는 소와 돼지를 때로는 산 채로 매장하기도 하는 '살처분'이 축산농가의 10분지 1인 160만 마리에 이른단다. 그 참혹한 모습에 평소 동물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 죽어가는 동물들이 가엾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고, 심지어 동물학대 논쟁까지 등장한다. 가족처럼 정성으로 돌보던 이들의 가슴은 찢어지고, 비상체제에 들어간 정부와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몇 십 년 만의 강추위 속에서도 방역업무에 밤낮이 없지만,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독감(ai)도 덩달아 퍼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이 무슨 변고인가. 이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경우 소, 돼지와는 비견할 수 없는 수의 닭과 오리가 죽어나가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육식재료는 모두 거덜 나게 생겼으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의 원인에 대해서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란 것 외에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광우병처럼,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사료를 먹고 자라야 할 가축들에게 인위적 조작을 가한 무지막지한 가공사료들, 예컨대 먹여서는 안 될 동물성 사료나 화학사료, 또는 항생제를 가미해서 먹이는 등, 자연질서에 어긋나게 사육함으로써 면역체계를 파괴한 것이다. 그 뿐인가. 헛간과 목장에 있던 소나 돼지를 축사로 옮겨 제대로 운동하지 못하도록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살만 찌우게 하는 야비한 방법으로 저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지나친 사람의 욕망이 위와 같은 가축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 그리고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공급해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합쳐져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시골에서 자란 4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초·중학교 시절 여름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소를 몰고 나가 냇가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하고 친구들과 씨름을 하던 추억이 있다. 볏단을 작두로 곱게 썰어 여물을 준비하고, 거기에 쌀겨를 풀어 가마솥에 끓여서 정성껏 소에게 먹이던 추억도.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마음대로 눕거나 일어서고, 한 바퀴 돌고 운동할 수 있는 외양간이 제공되었던 것도. 겨울 낮에는 소를 바깥으로 내놓아 마당이나 공터에 짚을 깔아서 한가하게 되새김질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주인이 준비한 여물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삼사십년 사이 대규모 축사체제로 전환되면서 자연에서 채취한 그대로가 아닌 가공된 사료만을 먹으며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비육(肥肉)'되는 신세로 바뀐 우리의 소. 규모의 영농을 추구하며 단기간에 많은 고기를 생산하겠다는 인간의 욕심과 집념이, 과거 한 집안 식구처럼 정성으로 돌보고 키우던 존재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꾸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고 한 성경 창세기 1장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땅위의 모든 생물을 정복하라고 하셨으니 동식물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 생각에서 비롯된 오역(誤譯)이다. 하나님은 땅 위의 생물들을 잘 다스려서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함께 살라고 하셨지, 함부로 대하고 고통을 주어도 좋다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자연 그대로의 삶을 영위하면서 조화롭게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창조질서를 회복할 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문명의 발달이 극에 달하고 있는 오늘, 태곳적 환경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마주 하고 있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또는 광우병 같은 재앙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하나님께서 만드신 본래의 모습과 역할을 최대한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생태환경을 보존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누구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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