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도 시들고, 사랑도 식고, 우정의 나뭇잎도 떨어졌지만 어머니의 가슴 속에 숨겨둔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다.' 라는 올리버 웬델 홈즈의 이 말이 갑자기 뇌리를 스쳤다. 사소한 언행이지만 그 이면엔 분명 어머니의 남다른 자식 사랑이 숨어있음을 느껴서이리라.

보름 가까이 감기를 독하게 앓은 탓인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이삿짐에서 나온 쓰레기가 집안에 널브러져 있는게 눈에 거슬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쓰레기를 양손 가득 들고 가까스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초등학교 3학년 쯤 된 남자 아이가 "아주머니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옆을 보니 아이의 어머니인 듯 한 젊은 여인도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내게 인사를 건넨다. 이에 힘없는 목소리로 "안녕 하세요?"라고 응대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여인이 나의 양손에 들려있는 쓰레기를 대신 들어주라고 아이한테 타이른다. 가벼워서 괜찮다고 호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아마도 내 모습이 남 보기에도 무척 아파 보였었나보다. 아이는 내 손에 들려진 쓰레기를 빼앗다시피 하여 들어주었다.

순간 어느 모자(母子)가 베푼 작은 친절이지만 갑자기 가슴이 훈훈하게 덥혀지는 것을 느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참으로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기쁨도 앞섰다. 무엇보다 그 여인의 어머니로서의 가르침이 너무나 훌륭해 보여 잔잔한 감동마저 일었다.

요즘 아이를 하나나 둘 낳아 키워서인지 지나친 과잉보호는 물론 남과 경쟁해 이기는 법을 알려주기 급급해 하고 있다. 하여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기 예사이다. 허나 내가 만난 그 여인은 자신의 자식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선행(善行)을 베풀 줄 아는 아이로 교육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고통, 남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아이는 훗날 필경 성공가도를 달리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삶이 기계화 되어 점점 삭막해질수록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세상은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이즈막도 가슴에 온기를 지닌 사람 곁엔 항상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지 않던가.

아이들을 이 세상이 원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데는 어머니의 올바른 교육이 꼭 필요하다. 학교에서 시험 점수 백점 맞는 아이로 키우는 것만이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학교 교육보다 가장 먼저 선행(先行)하는 교육은 바로 가정교육 아니던가. 그래서 아이의 최초 교사(敎師)는 바로 어머니이다.

/김혜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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