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1월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 주말을 맞아 뜻있는 시간을 갖고자 궁리하던 중 영화관을 가기로 하였다. tv등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보고 듣긴 하였지만 좀 더 가까이 느끼고자 그 분의 숭고한 일생을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기 위함이다.

상영 시간을 알아두고 잠시 친가에 들르니 조카와 친구 둘이 거실에서 무슨 일인지 모여 있었다.

"너희들 영화 보러 갈래? 아주 멋지고 유익한 영화야 ."

거절할까 눈치를 살피는데 흔쾌히 응한다. 조카는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고교생이 되는데 배정받은 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사춘기 특유의 반항과 불만으로 가족들의 걱정을 사고 있는 중이다.

이 영화를 보면 뭔가 깨닫고 조금이라도 달라지겠지 하는 위안을 안고 소녀들을 태우고 서둘러 그리로 향한다. 중,고생들은 관람비가 성인보다 1,000원이 적었고, 콜라와 팝콘을 사서 들려주니 만족한 표정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광주 카돌릭대에서 신부의 길을 결심한 사람, 2001년 사제품을 받자 아프리카 선교를 지원하여 수단 톤즈 마을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마을 사람들과 하나되어 모든 것을 바친 한국의 슈바이처. 의대에서 배운 의술로 밤낮없이 병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더욱이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내전으로 지친 소년들의 손에 총대신 악기를 쥐어주어 영혼을 위로해준 지휘자! 이렇듯 그의 삶은 눈코 뜰새없이 바쁘고 힘들었으나 한번도 지친 얼굴을 보인 적 없고 늘 웃음이 배어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려움을 이겨내며 지혜롭게 자란 이야기와 그 귀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깊은 아픔이 전해져 눈시울이 붉어진다.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소녀 세명도 엄숙히 영화를 보며 간간이 눈물을 훔친다.

내가 가장 감명깊게 본 것은 한센병으로 발가락이 없어지고 뭉그러져 신발을 신을 수 없자 신부님은 환자마다 발모양을 그려 그에 맞는 신발을 만들어 주고 신고 다닐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야말로 맞춤형 진단과 처방에 따른 부모도 하기 어려운 사랑이 아닌가!

사람은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사랑과 헌신을 베풀 수 있을까? 돌아오는 차안에서 소녀들에게 느낀 점이 있으면 듣고 싶다 하니 저마다 상기된 얼굴이다.

'우선 내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력을 길러야 하겠다.'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겠다.' 조카는 자신은 너무 행복하고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불만을 줄여야겠다고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우리 어른들과 같이 영화관을 가주어 정말 고마웠다."

나는 소녀들의 손을 하나씩 가만히 잡아 보았다. 나도 행복했다.

다음날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성당에 가보니 뜻밖의 소식에 신자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해지는 상황이다. 우리 성당 보좌로 있던 최신부님이 주교님의 명에 의해 이태리 로마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신부님도 4녀 1남의 외아들로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뜻이 있어 신부가 되신 분이다. 음악공부를 하려면 최소 7년 이상을먼 이국에 나가 지내야 하니 언어의 불편과 외로움 등 마음고생이 예견된 일이기에 마음이 무겁다. 알고보면 신자를 위한 일이지만 사제의 길, 그 고난의 길에 들어서야 하는 순명의 삶에 인생의 무게를 가늠할 길 없다.

최신부님 또한 본당 신자들을 부모처럼, 형제처럼 받들고 위해 주었고 특히 중, 고생 등 청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함께 음악 연주를 하는 등 고 이태석 신부와 닮은 점이 많았기에 신자들은 하나같이 아쉬워한다.

이태석 신부가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말기 대장암 판정을 받고 너무 갑자기 선종하였기에 톤즈 마을 학생들은 그 분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다.

톤즈마을 학생들이 다시 모여 이태석 신부를 위하여 불러준 노래, '사랑해'

신부님은 어느 새 한국어도 가르쳐 주었는지 발음은 어눌하지만 눈물짓는

먼 이국의 아이들의 얼굴이, 그리움 깃든 그 가락가락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모습은 가서 볼 수 없으나 그 마음이 오직 사랑이었던 두 사람, 정말로 사랑해.

/박종순 회남초 교감·수필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