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프게 하는 무리는 누구일까? 살인강도, 강간범, 유괴범, 소매치기, 사기꾼, 별의별 도둑들만 세상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도둑들은 법이 엄하게 벌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법의 비호를 받는 도둑들이 있다. 그러한 도둑을 백성들은 특권층과 모리배라고 부른다. 특권층은 권력의 특혜를 받는 무리들이고 모리배는 금융의 특혜를 받는 무리들이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뒤 모리배 짓을 잘하여 이른바 재벌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재벌은 수천억이 아니라 수조 억의 재산을 모아 마치 세상이 자신의 금고인양 문어발 기업을 만들어 갔다. 은행에 융자를 받아 마치 제 돈 인양 제멋대로 투자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세금을 탈세하여 잠깐 사이에 수억 수백억을 꿀꺽 삼켜 제 잇속만 챙겼다.

정치와 경제가 딱 붙어나면 턱없이 부자가 된 부유층이 생겨나고 특권층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특권층이란 돈과 권력의 밀월여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인은 특권층이나 부유층은 천명(天命)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골고루 나누어야 할 권력을 독식하고 땀 흘린 만큼 벌어서 분수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백성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짓은 천명을 어기는 것으로 보면 된다.

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땀을 흘려야 한다. 남들을 편하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덕을 지닌 사람이다. 덕(德)이란 인의(仁義)가 돋아나는 마음의 밭과 같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부유하게 살면 된다는 것만큼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은 없고 못사는 남들과 더불어 그 아픔을 나누는 것만큼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은 없다. 덕행(德行)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밝게 비추어 주는 햇빛과 같다. 오래전에 화제에 올랐던 대도(大盜)가 생각난다. 남의 집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터는 도둑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큰 도둑이든 좀도둑이든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묘하게도 화재의 주인공이 되고 때로는 인심의 동정마저 받는 한 도둑이 있어서 뭇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때 다방에 가면 으레 서로 화제의 주인공은 그 도둑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도(大盜)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신판 임꺽정이라고 입에 침을 발랐다. 도둑질한 것을 다시 훔치는 짓이야 뭐 나쁘냐고 옹호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었다. 하나의 도둑을 예찬하는 세상은 엄청나게 썩었음을 말한다. 온통 썩어버린 세상에는 누가 도둑이고 누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도(大盜)는 특권층의 집이나 평판이 별로 좋지 않은 부유층의 집만을 골라 도둑질을 했다. 보석이나 현금만 털었지 다른 것들은 손도 대지 않았고 사람을 헤치거나 흉기로 위협하지도 않았다. 도둑질을 당한 사람들은 신고마저 하기를 꺼렸다. 그 많은 보석을 무슨 돈으로 사서 숨겨 둘 수 있는가? 그 많은 현금은 무슨 수로 벌었느냐? 이러한 의문의 꼬리를 남겨 발목을 잡힐까봐 냉가슴만 앓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은근히 도둑질한 것을 다시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고 비꼬는 풍조마저 일었다. 임꺽정이 지방의 못된 토호들을 털어 배고픈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을 놓고 백성은 의적이라고 했고 방백들은 산적이라고 했던 옛날 생각을 나게 할 만큼 그 대도는 뒤가 구린 집만을 골라 털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 대도 역시 결국 붙들리게 되었다. 감방에 들어간 그 대도는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었다.

훔친 것을 다시 훔친 죄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먼저 훔친 자는 떵떵거리고 훔친 것을 다시 훔친 놈은 감방에서 콩밥을 먹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그 대도는 은근히 세상에 알려 보려고 탈출을 했다. 탈출극은 과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쫓고 대도는 쫓기면서 서부활극처럼 세상을 긴장시키면서 흥미 있게 했다. 결국 대도는 막다른 골목의 쥐가 되어 고양이처럼 밀려오는 수색조와 맞서게 되었다. 한 사람을 인질로 붙들고 버티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만일 대도가 그 인질을 방패삼아 그 인질에 해가 끼쳐진다면 대도되기는 글렀다고 안타까워했다. 과연 그는 대도였다. 인질잽이를 한 것을 뉘우치고 인질을 안전하게 풀어준 다음 스스로 잡혔다. 도둑이 잡혔으면 속이 시원할 터인데 그렇질 못했다. 특권을 누리는 도둑들이 세상을 썩게 한다는 생각을 그 대도가 생각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훔친 것을 훔쳤다는 것 또한 도둑일 뿐이다. 못된 사람들의 집만을 털었다고 도둑의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동정을 한다고 해도 도둑은 도둑일 뿐이고 특권이 있거나 부유하다고 외모를 아무리 꾸미고 의시대어도 그들 역시 숨은 도둑일 수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겉은 모두가 가짜라고 하였다. 겉만 장중하고 의젓하게 꾸민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제일 못된 원님일수록 제일 큰 송덕비를 세워 달라고 하는 법이다. 그런 송덕비는 겉으로 덕을 말하고 있지만 지나가는 길손들이 침을 뱉는다. 왜 그렇게 할까? 덕(德)을 훔치고 있는 까닭이다. 덕을 속이고 훔치는 짓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한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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