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객석에 앉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난해까지 새해맞이 음악회를 시점으로 바쁘더라도 가끔 짬을 내어 관람하던 날들이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말할 것도 없이 재앙 같은 코로나19 때문이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객쩍은 말이 유행이 되어버렸다. 모이는 것이 제한되다보니 준비 중이던 공연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공연장의 공기가 그립다. 연주자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옷자락이 스치고 악보를 넘길 때 손과 종이가 만나 내는 사각거림마저 그립다.

일상을 보상받으려는 시간에 유튜브로 강연을 듣는다. 우연히 퓨전국악연주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인다. 더구나 예전에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의 OST를 주로 다룬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좋았다. 조금 생소한 것은 곡 설명을 해주어 더듬어보면 추억을 끄집어내게 된다. 모르는 곡은 또 그런대로 음미하다보면 마음의 평온을 얻기도 하고 혼자만의 감읍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들의 팀 이름은 ‘모이라이’이다. 궁금함에 인터넷의 총기를 빌리기로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세 여인이며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잘라내는 자, 할당하는 자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경한 이야기보다는 ‘모여라’의 전라도 사투리로 해석하고 싶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는 따뜻한 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함께 놀자는 말이었으면 더 좋겠다. 또 어서 이 험난한 시기가 지나고 나면 지천명을 넘긴 친구들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함께 소풍을 가고 찻집을 찾아 들어가 수다를 떠는 일상의 회복을 동경하는 마음이다. 그때쯤엔 친구들과 좋아하는 공연을 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객석에 앉은 듯한 충만감에 빠져든다.

가만히 그들의 연주영상을 감상한다. 일주일에 한번 씩은 새로운 곡을 올리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가끔 첫 번째로 듣게 되는 영광을 갖기도 한다. 나만을 위한 공연처럼 감동적이다. 객석의 1층 1열에 앉은 착각에 빠진다. 그들의 열기가 뜨겁다. 자신을 갈고 닦는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인생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있다. 지금은 어느 험난한 길을 걷는 그들이다. 하지만 험난하다 하여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파란 하늘은 뭉게구름이 피어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이 된다.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씻어준다. 어디쯤에서 세상으로 쭉 뻗어나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명인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며 그들이 그런 이름으로 빛나는 날까지 모이라이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을 연마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마음껏 즐기는 일이었으면 한다. 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 행복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해지리라.

어느덧 한가위가 지나간다. 쓸쓸한 바람도 지나간다. 고향에 가는 것도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나는 일조차 미루었다. 이런 날 모이라이가 헛헛함을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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