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역사의 진행 방향인지 시대정신인지, 세상은 점점 양극단으로 갈라지고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만 있고 봄·가을은 희미해지는 계절의 양극화, 부자와 빈자로 갈라지는 삶의 양극화, 극단적 주장이 판치는 세상의 양극화가 그렇다. 이렇게 세상이 갈리니 타협과 대화는 설 자리를 잃고 목소리 큰 극단론자만 득세한다. 경멸해 마지않던 정치인도 자기 편이라 생각하면 정의의 화신인 양 칭송하고, 내 편이 아니라면 박멸과 퇴치의 대상으로 삼는 진영 논리가 세상을 휩쓴다. 자기 편만 진실하고 정의롭다는 상반된 두 주장이 격렬히 부딪친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은 주장 사이에 파묻혀 어떤 판단도 하기 어렵다.

일본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이라는 범죄 미스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는 헤이안 시대에 사무라이 부부가 도적을 만나 남편은 사망하고 아내는 겁탈 당한 사건을 다룬다. 나무꾼의 신고로 잡혀 온 당사자들은 같은 사건을 전부 다르게 진술한다. 도적은 겁탈 당한 여인이 자신을 받아들인 후 남편을 살해하라고 말해 무사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부인은 겁탈 당한 후 남편의 경멸을 견디지 못 해 자신을 죽여달라 절규하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고 말한다. 무녀의 입을 빌려 진술하는 죽은 무사는, 도적에게 추태를 보이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자결했다고 말한다.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가 밝히기 보다는 같은 사실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같은 사실을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후 심리학에서 '라쇼몽 효과'라는 말로 재탄생했다.

고의로 왜곡했든 자기도 모르게 세뇌됐든 이렇게 반복되는 주장은 타인을 속이고 결국은 자신도 속인다. 요즘 같이 SNS가 일반화되고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쉽게 모여, 그 속에 파묻히기 쉬운 환경이라면 생각은 점점 외곬로 부풀려져 어떤 타협과 대화도 어렵게 된다. 같은 사실도 사람마다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이 자의적 해석에 인간의 이기심이 더해지고 세력이 보태진다면 각각의 주장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양극단의 주장으로 세상이 전쟁터같이 편이 나눠질 때 어떻게 대화와 타협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꼭 극복해야 할 문제다.

타협의 첫 걸음은 양극단을 배제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이빙 경기나 피겨스케이팅 경기의 채점 방식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다수의 심판이 각각 점수를 매기고 그 중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미스코리아 선발도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된 극단적 평가를 막는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치 평가 문제에도 이런 식으로, 가장 목소리가 커 주목 받지만 화합에는 큰 걸림돌이 되는 양극단부터 제외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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