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운명의 시련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까? AD 6세기 고대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보에티우스는 찬란하게 빛나던 행운의 순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발당한 로마 전 원로원 의원 알비누스의 결백을 왕에게 변호하다 본인도 누명을 써 유배된 뒤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유배지에서 변호할 기회도 없이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길어 올린 깊은 철학적 성찰을 <철학의 위안>에 담았다. 작품에서 유배지 방안에 드러누워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 보에티우스 앞에 홀연히 나타난 철학의 여신이 그를 철학적 대화로 이끌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물론 철학의 여신은 철학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보에티우스가 설정한 내적 대화자이다.

철학의 여신은 우선 자기 스스로 선택해서 유배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자기를 유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준다. 유배란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떠나오는 것이며, 스스로 본원을 떠나 유배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유배시킬 수 없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에게 문답법으로 대화를 이끌며 인간의 근원과 인간 존재의 목적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근원은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이다(신이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신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신이 준 지극히 고귀한 본성이며, 이 고귀한 인간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할 목적이다.

철학은 보에티우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일깨워준다. 우리는 부나 명예,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기고, 그것들을 잃으면 불평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나의 소유인 것은 결코 남이 빼앗을 수 없으며, 남이 빼앗을 수 있는 것이라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소유가 아닌 다른 것들로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들로 장식해서 아름답고 고귀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착각이고 오류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가 된다면 그것은 운명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탄탄한 이성의 토대 위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신이 누리고 있는 특유의 평안함과 고요함”은 운명조차도 방해하거나 깨뜨릴 수 없다. 철학의 여신은 행운의 상태에서는 참된 친구들과 거짓된 친구들이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데, ‘거칠고 불친절하며 무시무시한 불운’이 거짓된 친구들은 다 데려가고, 참된 친구들만 우리 곁에 남겨두어 세상의 가장 고귀한 가치인 진정한 벗과의 사귐을 깨닫게 해주므로 그 유익이 적은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철학의 여신은 “참된 힘은 덕 있는 자들에게 있다”는 깨우침으로 우리에게 덕virtus에 의지해 선을 행하는 평생 도전할 가치를 제안한다. 한 사람의 선한 행실은 타인이 강제로 바꿀 수도, 타인의 악으로 훼손할 수도 없다. 여신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권력은 자기 “자신의 악한 욕망들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권력”임을 알려준다.

악인은 욕심을 따라 힘을 쓰기 때문에 참된 힘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신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는 과연 공존이 가능한가? 철학의 여신은 신은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차원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듯이 과거-현재-미래를 현재적으로 조망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이 신의 예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신의 축복이 임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벌이 주어지는 것도 신의 예지 안에서 가능하다.

인생의 수레바퀴 가장 밑바닥에서 불운으로 짓눌리거나 행운으로 타락하지 않는 중용의 미덕으로 우리에게 인간 본원적 가치를 회복하여 스스로 위로하는 힘을 일깨워주었던 보에티우스는 “그러므로 너희는 악을 멀리하고 미덕을 기르며, 바른 희망을 품고서 너희의 정신을 들어 올려서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겸손하게 간구를 드려라. 너희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심판주의 눈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 자신을 속이고자 하지만 않는다면,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이 너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마지막 유언 속에 평생 겸손한 간구로 미덕을 추구할 도전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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