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릿채'·'지열' 등서 정체성을 부각 / 등장인물 '문식' 통해 희망·투지 표현

[충청일보]충북작가회의 '충북작가' 30호에 발표된 권태응 선생(1918∼1951)의 작품들은 1999년 여름호에 발표한 동시집 '산골마을'과 2006년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새살림', '별리(別離)', '양반 머슴'에 이어 새롭게 발굴된 미발표작품이 전면 수록됐는데 소설, 수필, 희곡, 만문 등은 그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도종환 시인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권태응 선생의 아들 영함씨에게서 건네받은 미발표 작품들은 그동안 동요 동시집 머리글에서만 밝혔던, 요양생활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치열한 창작을 하게 된 바탕을 짐작할 수 있다.
해방 후 토착지주 송주사와의 갈등에 정면대결하고 농민조합과 청년조직을 이끌어내는 젊은이들의 활약을 담은 희곡 '동지(同志)들'과 아울러 고통스러운 병상의 삶을 견뎌내게 한 상징처럼 느껴지는 '파릿채'를 통해 남북통일까지 바라보고 있는 수필 '파릿채', 제일고보 시절 u.t.r 구락부를 결성해 휴일마다 등산모임을 갖고 모둠일기를 쓰면서 일본 식민지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토론하고 민족의식을 키웠다는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수필 '산(山)울님'과 해방 이후 혼란스런 정치 상황에서 탁월한 유머와 식견이 돋보이는 만문(漫文) '좌우론(左右論)'까지 만날 수 있다.
특히 '지열(地熱)'은 일본 유학 시절과 투옥 생활 끝에 얻은 병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는 고향공간에서의 정체성을 말해주듯 상징적인 제목이다.
권태응 선생의 분신과 같이 등장하는 '문식'은 독일의 패전과 일본의 패전을 예견하는 인물이다. 캄캄 무소식인 늪마을에서 유일하게 세계정세를 살피며 희망과 투지를 갖는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부자유 속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심경을 밝힐 수 없는 처지가 요양생활의 이중고를 겪고 있던 권태응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좌익사상으로 검거돼 철창생활까지 하고 석방됐던 것이나 곧바로 흉병(胸病)이 발병했다는 것 등 구체적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오랜 요양기를 추슬러 작품을 쓰고 농민극과 소인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내용을 마을 청년들과 논의하려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에서 뜨거운 '지열'을 느낄 수 있다.
'동지(同志)들'은 '고향 사람들'의 속편에 벌써 호평을 얻었고 여러 가지 애환을 거쳐 진전시켜 봤다는 머리말 만큼이나 고향에 녹아든 권태응 선생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희곡이다. 해방 후 한 달쯤 지난 1945년 9월 중순의 어떤 농촌이라고 한 것은 '늪마을'과 비슷하다.
'지열'에서는 문식이라는 화자의 술회에 그치는 바람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이 나온다. 대학 출신의 가난한 농부로 나오는 광식, 전형적인 지주 송주사에게 엮여 반동적인 인물이 되어가는 이생원과 광식과 혼례를 치르게 될 옥순(이생원의 딸)은 갈등을 봉합하고 승리를 일궈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안순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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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시인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권태응 선생의 아들 영함씨에게서 건네받은 미발표 작품 복사본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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