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만추의 계절을 보내면서 후르륵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내 생의 가을을 생각했었다. 계절에 비유를 하자면 지금 나도 가을을 살고 있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을 헤아려 보게 된다.

상갓집에 조문을 가서는 섭섭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의 나이에서 내 나이를 슬그머니 빼보게 된다. 삶은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었다, 젊어서의 가을이 채움이었다면 나이 들어서의 가을은 비움의 과정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을의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을 읽었다.

시골 촌부였던 미국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워싱턴 카운티의 어느 농장에서 1860년에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여인 ‘에나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자전적 스토리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를 ‘모지스 할머니’라고 불렀다.

가난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지스는 12세 때부터 가정부로 일을 하다가 남편 토마스 모지스를 만나서 버지니아로 이주해 농장 생활을 시작한다. 자녀를 10명을 낳았지만 5명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낮에는 고된 농장 일을 하고 밤에는 취미로 자수를 놓았다. 70세가 넘으면서 관절염으로 자수를 놓을 수 없게 되자 76세의 나이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그렸다. 일생 동안 삶속에서의 추억을 그렸다. 아마추어 일수록 너무 잘 그리려고 멋과 기교를 부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의 그림은 너무 순수해서 전문가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추억을 더듬어 그린 그의 아기자기한 풍경화는 미술 애호가인 어느 수집가의 눈에 띄면서부터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76세에 그림을 시작해서 80세에 첫 전시회를 가졌다.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에 선정되었고 93세에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기도 했다. 꾸밈이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그의 그림은 미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로 사랑받게 되었다.

76세에 그림을 시작해서 101세에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1600여점의 명작을 남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시절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듯이 가난과 자식을 반이나 잃은 불행을 겪고도 자신은 늘 행복했다며 감사를 잃지 않았다. 인생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깊은 통찰력이 바탕이 되었다. 육체노동으로 평생을 살았으면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예술적인 소양을 잃지 않고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녀의 근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유명해지면서 상업적인 B급 화가라는 전문가들의 악평과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미국의 국민화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화가였다. 예술가는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성공한 것이고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말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 주실 겁니다. 당신의 나이가 80이라고 하더라도요”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한편의 동화 같은 그녀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모지스 할머니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삶에 대해 만족하며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그녀의 말 들은 다르게 와 닿았다. 100년이란 시간을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그녀의 책 제목처럼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나의 이 가을도 또 다른 채움을 위한 찬란한 비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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