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권신원 전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황혼(黃昏)이란, 하루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의 삶을 비유할 때도 황혼이란 사람의 생애가 한창인 고비를 넘어 쇠퇴해져 종말에 이르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세태로 보면 60대 중반 이후의 노인분들, 즉 만년으로 비유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70세대까지도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풍속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사회에 번지고 있는 '황혼이혼'이나 '황혼육아'라는 말들이다. 이 가운데 황혼이혼 문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심각성을 더해주는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수 천 년 동안 유지해온 유교적 전통 가정윤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할아버지부터 3∼4세대가 한 가족으로 살면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하면서 화목하게 살아왔던 가족윤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1970년대 산업화 시대가 전개되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가족만의 독특한 유대감과 인정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됐으며, 부모와 자식 간 유대감은 물론이고 부부지간의 애정과 의무감도 많은 손상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혼을 결심했던 할머니 한 분은 '큰아들 돌배기 사진 한 장'을 들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사진을 보면서 그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면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환갑이 다되는 아들을 생각해서 남편과 헤어지는 것을 포기했다며 회한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이 같은 결심은 가족을 위해 남은 삶은 더 아름답게 살겠다는 애증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황혼의 삶이 더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얼마 전 병원에서 우연히 듣게 된 어떤 할머니와 간호사의 대화에서 할머니는 "내가 안보면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저는 입원 못해요"라며 손주 걱정을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할머니의 가족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을 보는 한편 손주 육아를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삶도 보였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이유로 대다수의 가정에서 육아 문제를 부부의 부모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식을 키워봐야 정도 들고 부모마음을 안다'며 가족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 왔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유산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백세시대의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어르신들이 사시는 날까지는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자부심을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황혼을 사시는 분들이 이러한 자부심으로 건강하게 사시다 보면 자연히 만년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도 노년층의 위한 더 많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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