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붉게 물들었던 단풍이 나래를 접습니다. 실핏줄 같은 잔가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당당해 보입니다. 충청북도교육문화원 ‘진천문학관’에서는 올해 세 번째 가족문집 ‘겨울나무들’을 출간했습니다. 아동문학가 권태응 선생님의 동시 ‘겨울나무들’에서 제목을 차용하였습니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2020년은 평범한 일상을 흩트려 놓았고,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습니다. 별일이 다 많았습니다. 마스크를 씌우고, 사람들 사이를 뚝뚝 떼어 놓았지만. 단풍이 하르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던 11월, 가족문집 3기 프로그램은 가상공간에서 영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권태응 선생은 그의 동시에서 ‘바람에게 옷들을 모두 뺏기고 발가숭이로 서 있는 겨울나무들 추울 테면 추워라. 어디 해보자, 서로 기운 돋구어 버티고 섰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며 봄의 꿈을 꾸면서 굳세게 섰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우리의 현실에서도 봄의 꿈을 노래한 선생의 심정이 그대로 읽혀집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매달고 있던 욕심도 내려놓고, 저를 돋보이게 하려는 가식도 모두 떨궈 버린 겨울나무,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는 순명을 그에게서 배웁니다. 본연에 충실하고 있는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나무가 모진 겨울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건, 그 안에 있는 잎눈 꽃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보듬어 품듯이 떨켜를 만들어 다음해의 생을 이어가기 위함이지요. 매주 토요일 화면을 통해 만나는 부모님의 모습이 한 그루 겨울나무처럼 느껴집니다. 바쁜 중에서 자녀들과 귀한 토요일 오후 꼬박 3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정성이 감동을 줍니다.

영상 수업을 들으며 알콩달콩 풀어놓은 가족 이야기가 화면 저 너머로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해옵니다. 앨범 속에서, 휴대폰에서 잠자고 있던 사진을 펼쳐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자리옷으로 얼굴을 내민 어느 집 개구쟁이 막내 모습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언니가 수업하는 옆에서 출반주 하다가 살그머니 잠이 든 다섯 살 동생의 모습이 화면 한쪽으로 살짝 비춰집니다. 쌔근쌔근 평화로운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사진을 찍어 작품으로 내놓는 엄마의 얼굴에 행복이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족문집은 그렇게 온 가족이 편안히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얘기를 글로, 그림으로 내 맘껏 표현하는 겁니다. 귀하지 않은 생각은 없습니다. 서로의 생각에 칭찬하고 격려하며 돈독해지는 가족사랑, 그 속에서 자유롭고 창의로운 생각, 당당함이 싹트겠지요. 같은 소재를 놓고 가족끼리 이야기 분분하다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되는 과정을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밖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시기에 집 안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잘 노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작은 가슴엔 꽃잎이 꼬깃꼬깃 몸을 접어 웅크리고 들앉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맨 몸으로 겨울 한설을 막으며 지켜가는 겨울눈입니다.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예쁜 꿈을 꾸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꿈을 보듬어 안고 나목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에 햇살이 따사로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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