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직원이 민망한 듯 내 뒤에 주춤거리고 서있다. 다음에는 좀 더 일찍 나와서 우렁이 각시처럼 감쪽같이 청소를 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들어 여러 개의 심리검사를 해 보았다. 그때 마다 좋고 싫음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나는 사무적인 업무를 처리하거나 숫자를 다루는 일에는 매우 취약했다. 대기업에서 부서 관리자로 있을 때는 유능한 여사원들이 깔끔하게 작성한 공문이나 자료를 결재해 주는 것이 나의 직무였다. 직원을 상담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펀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자동차를 타고 근교로 나가 바람도 쐬고 시장에도 가보고 백화점도 거닐면서 생각을 했다. 그렇게 쏘다니다 보면 막힌 듯 했던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나와서 새벽에 일처리를 하는 날도 있었다. 근무기간 내내 최고의 고과점수도 받고 충분한 인센티브도 받았다. 내 업무는 책상에 앉아 있는 절대적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몰입과 자신에 대한 통제가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가능했던 것도 내 성격유형 때문인 것을 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기업에서는 내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회사가 만들어 주었지만 조그맣게 시작한 교육원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청소를 하고 전화를 받고 강의 계획표를 짜고 고용노동부에 보고를 하고 외부 강의를 나가고 수입 지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사무적 업무 때문에 울고 싶을 만치 힘들었다. 겨우 여유가 생겨 여성인력개발센터를 통해 주부인턴 사원을 채용했다. 경력단절 주부가 취업을 하고자 하나 직업현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해 3개월간의 인턴사원을 거쳐 6개월 이상 고용을 하는 조건이었다. 인턴기간동안 급여를 보조해주는 조건이었다. 차분하고 얌전하고 정직해 보이는 분을 면접했다. 그 분은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한 번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출근했다. 뽀득뽀득 사무실을 닦고 전화가 오면 정성어린 목소리로 응대했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6개월쯤 되자 컴퓨터에 대한 공포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서 사표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분의 성향 역시 나와 비슷했던 것이다.

다시 한명의 직원과 일을 하며 직무의 효율성을 생각해 보았다. 새로 오신 분은 공문서 작성이나 기획력이 아주 뛰어났다. 내가 말만 하면 바로 글로 뜨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할 일이 튀어 나왔다. 하루 종일 컴퓨터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낭랑했다. 시간표 짜고, 교육생 입력하고, 강의 교안 만들고, 노동부 서류 정리하느라 혼자서 분주했다. 교육원 업무가 처음인데도 스스로 매뉴얼을 체크해가며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잡아주었다. 마치 사람 人자를 만들어 내듯 두 사람이 기대어 성과를 내면서 일이 즐거웠다.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한 강의 스케줄로 지칠 만도 한데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새날의 몸이 거뜬하다. 봉걸레로 애벌 바닥을 닦은 후 엎드려서 꼼꼼하게 손 걸레질을 했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철퍼덕 앉아서 숨을 고르며 내 교육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길 소원했다. 머리카락 한 개를 집어 들다가 테이프를 들고 바닥에 엎드렸다. 엎드려 기도하듯 교육장 구석구석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며 티끌을 집어 올렸다. 기어코 가장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서야 보이는 머리카락과 묵은 티끌들. 이보다 더 깨끗할 수 없다는 만족감으로 허리를 들었을 때 땀방울이 코끝에서 툭 떨어진다.하루아침 몸의 기도를 끝내고나서 하고 싶은 일이 기다리는 시간 속으로 뛰어든다. 오늘도 여전히 즐거울 것이라는 상상으로 충만하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