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새 달력의 첫 장을 펴며 ‘올해는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되뇌는 게 벌써 몇 번째인가. 한 해가 시작되는 이맘때는 늘 지난해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그리고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기원이 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과연 언제 행복감을 느낄까.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절실히 원했던 것이 이뤄질 때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삶의 대부분은 내키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최고로 만족도가 높은 삶으로 일컬어지는 ‘덕업일치(덕業一致)’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이 말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덕질’이 직업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덕질’은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집착해 몰두하는 행위에 대해 쓰이는 용어다.

한 가지에 외곬으로 파고들며 집착하는 사회성 없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일본어가 ‘오타쿠(Otaku, オタク)’이다. 이 단어가 ‘덕질’의 어원이다. ‘오타쿠’라는 말이 한국으로 들어와 ‘오덕후’가 되고 줄여서 ‘오덕’ 또는 ‘덕후’가 됐다. 요즘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거나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행위를 말하는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다. ‘덕질’로부터 파생된 단어도 많다. ‘입덕’(덕질을 시작하는 행위), ‘탈덕’(덕질을 포기하는 것),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거 행복하게 하자), ‘성덕’, ‘초덕’, ‘잡덕’, ‘휴덕’... 등 이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용어가 증명하듯 ‘덕질’은 요즘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현상이 돼버렸다.

같은 일이라도 원해서 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의 톰은 이모로부터 벌을 받아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게 된다. 친구들이 함께 놀자고 했을 때 톰이 “벌을 받아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라고 했다면 친구들은 아마도 톰을 놀려대며 자기들끼리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톰은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 즐겁게 하는 것이라 했고 친구들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도록 하였다. 그 결과 톰은 친구들에게 대가를 받으면서 그 일을 하게 시키고, 자신은 편히 쉬면서 그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힘들게 하는 노동은 운동이 되지 않고, 즐기며 하는 운동은 비용과 고통을 동반해도 즐거운 일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완벽하게 모든 조건을 갖춰 행복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능력과 환경을 갖추고 운의 도움까지 받아야 겨우 꿈을 이룰 수 있는 게 현실이고, 아주 소수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고 실현 가능한 작은 대상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덕질’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행복실현의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삭막한 세상에서 자신의 온기로 스스로 위로하고 소박한 행복을 이루는 방법이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과 위안을 얻으며 행복으로 가는 샛길이 ‘덕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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