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을 맞이했다. 이 문장은 ‘희망의 2021년’으로 서술해야 하지만 우리가 맞이하는 새해 정국은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가의 미래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선뜻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작년 말 예년처럼 학생들과 함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이문열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소설 초판이 1987년에 출간되었으니 2021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30년이 훌쩍 지난 시간적 거리가 있다. 영화는 한병태와 엄석대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현재-과거-현재 형식의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한병태는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으로 이 소설의 화자이면서 주인공이다. 5학년 2반으로 전학을 오면서 학급의 급장인 엄석대의 왕국에 저항한다. 하지만 엄석대 다음의 위치까지 오른 그는 권력의 달콤한 맛에 빠지게 되고 엄석대와 같은 비굴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영화의 하강부분에서 새로운 담임교사에 의해 엄석대의 잘못이 발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실토하지 않는 부정직한 모습을 보인다.

엄석대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면서 학급의 급장으로서 공부를 잘할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 있어 모든 교사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병태가 전학으로 오면서 도전을 받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담임교사에 의해 엄석대의 역량이 폭력과 독재로 갈취한 것으로 밝혀진다. 이후 엄석대는 학교에 불을 지르고 종적을 감춘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골 초등학교 5학년 2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현대적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생경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가 2021년이라는 현실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1950년대 교실에서 군림하던 엄석대와 굴종의 모습을 보인 한병태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다수 목격된다. 권력화되고 예속화된 우리들의 영웅들이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는 의미이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서 진영논리로 나누어 소통보다는 서로를 불신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흑백논리가 난무한다.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자세는 눈을 닦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철학은 상실되고 우리 편엔 관대하고 다른 편엔 엄격하며, 우리는 되지만 남은 안된다는 ‘내로남불’과 ‘내편무죄, 네편유죄’ 풍조가 만연한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의와 진실의 잣대가 달라지며 논리와 상식에서 벗어난 비열한 패거리 문화가 판을 친다.

새해엔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갈라진 민심은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전체주의는 구시대적 발상에 불과하다. 시민단체가 제자리를 찾고 도덕과 상식이 존재하는 사회, 정의와 진실이 강물처럼 넘쳐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라고 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그리운 새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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