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

세배 돈 몇 닢 쥐면 벌어지는 입 / 열 손가락 꼽아 보며 날개 단 아이 / 주머니 불어날 때 하늘 난다. / 상아래 혼자 된 떡국 사발 하나 / 할머니가 덜어낸 주름살 무게 /

필자의 동시 '설날 그리기'다. 세계를 농락한 코로나 공포 이후 두 번째 명절이다. 지난 추석명절도 그랬듯 '비대면 귀성'에 묶인  썰렁 설 풍경, 어렸을 적 발동기 방앗간에서 갓 빼온 떡가래 감촉과 이웃마을 어른들 찾아 세배를 다닌 추억이 수척하다. 질벅질벅 무거운 발걸음, 앞가림조차 어두워 피로가 몰려오는 동안 나이 한 살은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질 태세다.

그나저나 취업과 결혼·출산 길목에 선 N포 젊음들의 먼발치 등대, '감염이 누그러지면 내려갈게요.' 말막음인 걸 부모 형제 먼저 눈치 챈다. '밥은, 잠은, 건강은?' 고스란한 걱정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럴만하다. '위기·절정·고비'와 함께 자영업자 몰락, 전세 값 고공행진, 가계부채 증가로 우려와 불안의 한계를 절감한다.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 휜 5060부모, 내 새끼 업신여겨지는 것보다 더 딱한 사정은 없다. '차라리 귀향을 권해볼까·…' 언제나 편들어주던 그 마음이 울컥했을 어휘다.  행여 동네로 향한 자동차소리라도 들릴 땐 맨발에 뛰어나가 헛기침 해대는 부모 희망은 언제 쯤 어떻게 설명할 텐가.   

필자에겐 구순 가깝도록 종갓집 장 손부 노릇 못 뗀 큰 형수와 명절·제사 날엔 1km 족한 진입로를 말끔하게 싸리 비질해 놓고 동생들 마중하는 맏형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주요 방역지표 악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으뜸 방역'이라며 일찌감치 ' 멈춤, 2호 행정명령'을 내리셨다. 6촌 7촌 다닥다닥 퍼질러 앉아 허접스런 얘기에도 턱 빠지게 웃던 명절 추억 뒤로 평생 8남매 맷집을 키워내느라 굵은 눈물을 숨긴 채 걱정거릴 달고서 부산한 장편 시(詩)를 쓰신 부모님의 버거워 지친 무게가 비쳐진다.          

설 특집 방송 프로그램 역시 '효도계약서'를 주제로 패널 마다 짐스러워한다. 효를 곧 액수로 환산하니 자식들에겐 민폐가 되기 십상이다. 재산 증여와 상속 도화선인 '병든 부모 누구 것?'  빼먹고 벗어날 배은망덕으로 난파한 가족관계 같아 억장은 무너진다. 자식이 자식답고 형제자매 우애가 도톰할 때 비로소 명절도 만남을 군불 지피는 것, 피붙이끼리의 생채기야말로 곪아터져야 끝난다. 그렇다고 신축년 설 침묵 모두를 뭉뚱그려 미리 기죽지 말자.  잔머리 굴려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어정쩡한 조급함에서 벗어나자. 지난해 묶였던 포옹할 품, 넉넉할 만큼 항체로 쌓였잖은가. 이제 지루하고 구차한 날들도 갑(甲)질을 멈출 테니 투정·절망 아닌 온기 서린 품 하나면 족하다. 격이 다른 2021년, 웅비(雄飛)할 시나리오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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