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해가 한 뼘쯤은 남았을까! 초겨울 저녁은 스산하다. 저녁노을을 보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달려가는 창밖으로 강물도 따라 흐른다. 이미 정해져 있었던 필연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강물이다. 이제 곧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몸을 섞으며 유유히 한몸이 되어 한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이 마치 당연한 순리인 듯이 도도하게 흘러간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산을 넘고 강을 지나서 달려온 길이다.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지나며 결국에는 둘이 만나서 함께 흐른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 영원한 만남도 영원한 이별도 없다는 뜻을 돌아보게 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곳을 두물머리라고 한다. 두 물이 합쳐지는 곳,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순수한 우리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한강을 이루는 곳이다.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해서 남쪽으로 흐르며 강원도 철원을 지나고 화천을 지난다. 흐르고 흐르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 대덕산에서 발원해 영월에서 평창을 돌고 단양을 지난다. 서쪽으로 흐르다 충주를 거쳐서 경기도로 들어간다. 이후에 섬강을 합치고 북서로 흘러 여주를 관류하면서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게 된다. 인연이란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고 지나오면서도 결국에는 만나서 둘이 하나가 되는 숙명 같은 것인가보다.

한때 이곳은 시끌벅적하던 나루터였었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 뚝섬 나루와 마포 나루를 가기 전에 하루를 묵어 쉬어가는 나루터였다. 강원도 산골에서 물길을 따라온 뗏목과 나무들이 사람들과 하루를 쉬어가는 곳이었다. 주막집이 늘어서고 육자배기 젓가락 장단이 흥건했었다. 서울로 오가는 길손들로 북적거리던 마을이었다. 두물머리가 포구 역할을 마감한 것은 팔당댐이 생기면서부터였다. 서울로 드나들던 뱃길은 육로가 대신하여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황포돗대도 더이상 닻을 내리지 않게 되었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수령이 400년 된 늙은 느티나무는 두물머리의 파수꾼처럼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번창했던 나루터였던 그 옛날에도 이 자리에 서 있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긴 세월의 흔적들을 상상해보았다. 서울의 상수원으로 보호가 되어있어서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고요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른 새벽 물안개 절경과 저녁노을을 담으려는 출사 객들과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풍경을 즐기는 쉼터가 되었다. 산 그림자를 품고 겹겹이 산자락 치마폭에서 강물의 고운 숨결이 머문다.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닦아온 인품처럼 고요하고 깊은 강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본다. 강둑을 걸으면서 나의 심연의 못을 들여다보게 된다. 시냇물이 자갈돌을 지나갈 때 소리가 더 요란하듯이 아직도 내 마음의 강물은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소요스럽기만하다. 얼마큼을 더 흘러가야 고요해질수있을까! 두물머리의 저녁노을을 보면서 황혼을 마주해보고 싶어 달려갔던 길이었지만 흐린 하늘에 슬금슬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황혼을 직면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강물은 우리를 따라오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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