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3월 첫날, 비가 내린다. 102번째 맞는 삼일절이다. 일제의 폭력 앞에 달랑 태극기 하나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독립 만세를 외친 날이다. 어린 학생으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일본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맨몸으로 맞섰던 이들은 다름 아닌, 그저 평범한 민초들이었다. 깨어있는 우리의 3.1정신이다. 

의식 있는 이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암암리 독립의 투쟁 의지에 불을 붙였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국외로 망명해서까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부부간, 모녀간 서로 '독립'이라는 명제를 공유하며 동지로 활약한 이들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구국의 책임이 어찌 남자들만의 몫이겠습니까. 우리는 절대 우리 여성의 역량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성입니다."

'한국혁명여성동맹'창립 선언서 내용 중 일부이다. 한국혁명여성동맹은 1940년 6월 중국 중경에서 결성한 여성 활동 단체로 '한국독립당 산하에 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지원과 교육 활동이 주요 업무다. 그 중심에 선 이가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김수현과 그의 딸 이국영이다.

김수현(1898~1985)의 남편 이광 역시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로 온 가족이 함께했다. 딸 이국영도 독립운동가인 남편 민영구를 만나 동지로서 시아버지 민필호와 뜻을 함께 하며 나라 독립에 투신한다. 양가 사돈 간 모두 독립운동으로 하나가 되어 가계를 이룬 셈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이처럼 뜻을 함께 하며 자식들을 나눠 가진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이라 해서 결코 뒷바라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김수현 모녀는 멀리 타국에서 나란히 혁명여성동맹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창립 기념사진을 통해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선 모녀가 아닌, 동지애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선언서 내용에서 보듯이 나라를 구하는데 있어 남녀 구별을 않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양성평등을 주장해 오면서 여권의 신장이 최근 몇 년 사이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예로부터 우리 여성들은 이미 동등한 자격으로 국란 극복에 앞장서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에서는 여성의 활약상이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 15,000여 명이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과 여성의 참정권,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권을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면서 비롯되었다.   "빵과 자유를 달라" 여성들의 외침은 생존권과 참정권을 달라는 절규였다.

 이로 인해 1910년 '의류 노동자 연합' 조직을 탄생시켰고, 1911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펼치기 시작하여 1975년 비로소 UN에 공식 지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활동은 1985년 들어서부터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활약상을 보면 당당히 나라를 지켜온 여성들의 강인한 힘을 엿볼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 우리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찾고 재조명하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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