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탈진실(post truth)이라는 말이 도처에서 쓰인다. 이른바 사실을 왜곡시키고 진실을 비껴가게 하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탈진실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fact)이 아닌 것들이 사실처럼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며 정신을 병들게 한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주류파 미디어를 불신하고 비난하면서 유튜브와 같은 SNS(사회관계망)에 떠다니는 여러 음모적인 스토리를 수용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과학 문명의 발달은 정보의 공유화를 가져왔다. 안방에 앉아 세계 곳곳의 움직임들을 엿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를 살펴보면 진실된 것과 황당한 것들이 혼재한다. 지극히 혐오감을 주는 것들도 있다. 혐오감이 짙을수록 검색순위는 높아지고 팔로워(followers)가 많아 이것이 상업용 돈벌이로 연결되기도 한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적인 호소가 더 효과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최근 민심이 들끓고 있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에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신도시 지정을 철회하라는 국민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고 성토한다. 성남 분당에서 LH 고위급 간부가 극단적 선택을 하더니 파주사업본부에서도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정부가 발표한 신도시 투기 의혹 인원 '20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니 조사를 믿기도 어려워진다.

떠돌던 가짜 뉴스들이 진실이 된 것이다. 그들은 내부정보를 빼돌려 택지 예정지 땅을 사들인 뒤 거액의 보상금을 타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출받은 땅에 묘목심기, 지분 쪼개기 등의 수법을 동원했다. 개발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었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위공직자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쏟아진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정부 부동산정책 조사에서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74%에 달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수많은 가짜뉴스가 사회를 요동치게 하고 국가적인 사기와 모함도 서슴없이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총칼 무기로 치른 2차 대전보다 더 무서운 탈진실과의 전쟁이 눈에 보이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소통의 결여와 불신이 그 원인이다. 서로 다른 의견 간 교류 없이 자신이 믿는 가치만이 강화되며, 모두가 '진실'로 인정하는 합의점을 찾기 힘든 사회에서 사회적 신뢰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LH 사태에서 국가와 언론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탈진실의 사회에서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말한다. 정치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다.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성 언론과 함께 디지털 미디어가 탈진실의 흐름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 이들은 탈진실 시대의 정보유통을 주도한 장으로서 향후 그들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탈진실의 시대에 시급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회복이다. 진실은 권력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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