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이라는 영국의 전래동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금발 소녀 골디락스(Goldilocks)가 어느 날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곰 세 마리가 사는 오두막을 발견한다. 빈 오두막에 들어간 골디락스는 식탁에 차려 놓은 세 그릇의 수프를 발견했다. 뜨거운 수프와 차갑게 식은 수프 그리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수프였다. 골디락스는 세 번째 수프를 맛있게 먹었다. 이 동화로부터 유래된 용어로 천문학에 쓰이는 골디락스 존(zone)이 있고 경제학에서는 골디락스 경제라는 말이 있다.
 
골디락스 존은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는 지구처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생명체가 발생하기 좋은 지역을 말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골디락스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올만큼 과열되지 않고, 경기 침체를 우려할 만큼 냉각되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태를 말한다. 이렇듯 적당한 상태를 골디락스로 표현하는데, 사람 사이에도 아마 적당한 골디락스 거리란 게 존재할 것 같다.
 
사람 간의 거리에 적당하다는 표현은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 적당을 유지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너무 관심을 기울여 가까이 가면 참견이 되고 너무 멀어지면 방치가 돼버린다. 90년대에 가수 피노키오가 불러 크게 유행했던 '사랑과 우정 사이'란 가요가 있었다. 그 뒤 여러 번 리메이크됐던 곡으로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이라는 의미심장한 가사가 있다.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연인이라기엔 좀 부족한 듯한 애매한 거리를 표현한 노래인데 그 애매한 거리는 결국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사람 관계의 거리는 참으로 오묘하고 어렵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사촌보다 가까운 내 가족이 땅을 사면 내 일처럼 기쁠 테고 사촌보다 먼 남이 사면 관심 밖의 남의 일이 된다. 그러나 가족도 남도 아닌 사촌 정도의 거리가 내게 심리적인 영향을 주는 거리라는 말일 수 있겠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직 루빈(Zick Rubin)이 처음 사용한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도 그렇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낮선 이방인에게 비밀스럽고 사적인 일들에 대해 편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처럼 너무 친밀하거나, 복잡하게 얽혀있어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다시 볼 일이 없는 이에게는 오히려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픈 일을 겪을 때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같이 고통받을까 말 못 하고, 너무 먼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일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다. 뜨거운 난로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너무 멀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거리로 불편하게 하지 않으며, 적당한 관심으로 객관성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는 지혜로운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도구로 셀카봉이라는 물건이 탄생했다. 멋진 사진을 위해 셀카봉이 만들어 주는 거리가 필요하듯 삶에서도 적절한 거리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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