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3월의 마지막, 아침 햇살이 밝다. 찻물을 끓여 커피잔에 붓는다. 어느 틈에 모닝커피 한잔을 하면서 하루를 열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차 한 잔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 고유의 차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시류이니 어쩌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역사는 고조선으로 거슬러 오르니 역사가 깊다. 제천의례는 물론이고, 명절 차례상 역시 신께 차(茶)로 예를 올리는 행위 아닌가. 왕실이나 양반가, 승려들의 차 문화를 엿보면 정성스럽게 행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다도(茶道), 자아 수련이었다.

결혼 혼수품으로 찻잔을 빼놓지 않았던 것도 차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리라. 차 맛보다 예쁜 찻잔에 마음을 더 빼앗기던 시절이 있었다. 매끈한 도자기류가 있는가 하면, 투박한 멋을 풍기는 토기도 있다. 찻잔 역시 차의 종류와 시대에 따라 각양각색을 띠며 각종 생활자기와 함께 발전해 왔고, 우리나라 도요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해 왔다. 도기 제조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예술의 경지에 닿아 있다. 도공을 장인이라 일컫는 것이 그 이유다.

진천에는 ‘백제 토기 요지’ 유적이 있다. 철기시대의 타날문(打捺文) 토기부터 백제 토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마터다. 3,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가마터, 그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노란 잔디를 덮고 역사가 잠들어 있는 현장에 다다랐다. 미호천을 끼고 있는 야산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산수리 ‘백제요지’다. 요지(窯址)는 토기, 질그릇, 오지그릇, 도자기와 기와 벽돌, 숯 등을 구워내는 가마터를 뜻한다.

중부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문화유적조사 중 1987년~ 1991년까지 한남대학교 발굴단에 의해 조사된 유적으로 총 8기가 발굴되었다. 가마터는 현재 땅속에 발굴한 원형 그대로 묻혀 있고, 육안으로는 터를 구분해 놓은 잔디광장만 볼 수 있다. 가마 배치도 안내판과 설명문을 보면서 가마터의 구조를 겨우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장에 와서 교과서를 읽는 셈이지만, 그렇게라도 기억해야 할 유산이다.

8기 중 소형(2, 3m) 4기는 능선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바닥과 벽은 땅을 파 지하에 설치하고 천장은 지상으로 나온 반지하식이다. 대형(7m 이상) 4기는 그보다 약간 경사면에 있으며 아궁이 쪽에 굴을 파고 바닥과 벽이 땅속에 설치된 완전 지하식이다. 가마의 구조는 아궁이 바로 밑에 불을 때는 곳과 토기를 놓았던 곳, 연기가 빠져나가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 산수리 가마터는 삼용리 토기 요지와 함께 한반도 중서부지방에서 마한 토기로부터 백제토기로의 전환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귀한 자료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재현해 놓을 방법은 없을까.

가마에 불을 때던 아궁이를 통해 열이 전해져 토기가 익어가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 뭉클하게 우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뛰어난 우리 전통문화에 무감각해져 가는 젊은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현물이 없는 현장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바람만 잠시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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