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리 정치권에 계륵이란 말이 또 등장했다. 계륵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하나는, 닭의 갈비를 의미하고, 또 하나는 신체가 마르고 약한 사람을 가리킨다. 첫 번째 뜻인 닭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깝다는 것이니, 무엇을 취해도 이렇다 할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도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이런 뜻의 계륵은 중국 후한서 양수전에서 나온다.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가 한중을 놓고 대결을 하고 있을 때 조조가 진퇴양난의 곤경에서 계륵을 말하고 주부 양수가 이 말의 의미를 재빨리 깨닫고 철수준비를 한데서 연유한다. 두 번째의 경우는, 닭의 갈빗대 모양으로 골격이 빈약한 사람을 비유하는 것으로 순 우리말로 하면 '갈비씨'와 대동소이하다. 닭의 갈비를 빗댄 계륵이란 용어는 정치권이나 일반 사회에서 널리 쓰여 왔는데 요즘에는 '미워도 충청의 아들'이라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계륵으로 취급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대 총장에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동반성장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명한 경제학자 정운찬씨가 어쩌다 여당의 최고위원으로부터 '계륵 신세'로 평가절하 됐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꽃가마만을 바란다?


누가 그랬는가. 바로 홍준표 의원이다. '초과이익공유제' 문제로 정운찬 동방성장위원장과 날선 공방을 벌여온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cbs라디오 '변상욱 뉴스쇼'를 통해 "이번 신정아 파동이 생기면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계륵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정 전 총리가) 사실 여부를 떠나 '차일드라이크'(childlike)인지 '차일드쉬'(childish)인지 구별이 잘 안되다"고 말하고, 경기 성남 분당을 공천과 관련, "정치적으로 실패한 전 정 총리는 처음부터 안 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2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도 "요즘 정치판에서는 전부 자기 자신이 풍파를 헤쳐 나가고 자기 발로 뛰는데, 가만히 앉아서 꽃가마 태워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한 인물까지 데려올 수는 없다"며 정 전 총리의 여권 후보 영입을 반대했다. 홍 최고의원의 일방적인 말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정 전 총리가 4.27 재. 보궐선거에서 분당을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겠다는 의사표시가 없는데도 정 전 총리를 비토 하는 한나라당 일부 입김이 강한데다 신정아 자서전파동까지 발생, 정 전 총리의 정치행로는 계륵을 넘어 첩첩산중험난 그 자체라고 보여진다.


-험난한 정치행로


지난 날 세종시 수정안 추진으로 충청인에게 미운털이 박혔지만 정 전 총리는 어쩔 수 없이 충청도 아들이다. 말썽을 부리며 집나간 아들이라도 한 번 아들은 영원히 아들이다. 그래서 정 전 총리가 정치권에서 비하되고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적지 않은 충천인의 마음은 편치 않다. 어쩌면 저명한 경제학자 정 전 총리가 한국 정치물정을 제대로 모르고 정치권에 몸을 담근 게 원초적 화근인지도 모른다. 이미 과거지사가 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정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기용했을 때 '인간 정운찬'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위험한 선택'을 했다고 진단했다. 그가 선택한 총리직이 차기 대권을 향한 '꽃가마'가 되기 어렵다고 내다봤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는 그런 전망이 틀리지 않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어서 그 변화 가능성을 속단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역적인 면에서 정치적 기반이 없는데다 여권 내에서 자신이 구축한 정치적 발판이 거의 없는 정 전 총리는 여의도이건 불루하우스 건 간에 정치적 착근이 참으로 지난해 보인다. 선거에 좌우되는 정치판에 자립적 뿌리내리기는 고사하고 계륵으로 취급받게 되어서는 '여생의 설계'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정치병'은 한 번 걸려들면 그 뜻을 이루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이라고 하지만, 이제라도 경제학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로 복귀하는 용단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충청의 아들로 재생할 수 있다.




/김춘길 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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