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하면 어떤 외부의 구속이나 간섭없이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오직 자유만이 허용되는 공동체나 사회는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제약도 없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 껏 할 수 있다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도 허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의 개념을 이러한 극단적인 모습으로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대부분 타인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배가 고픈 사람은 완전한 자유가 허용되는 곳이라면 다른 사람의 음식이라고 마음대로 먹지 않겠는가? 그로 인해 본래 음식의 주인이 먹지 못하고 나 대신 배를 곪는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자유의 개념에 의하면 나는 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음식도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음식을 빼앗긴 사람은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보복할 권리도 갖는다. 그를 미워하거나 혹은 그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거나 심지어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완전한 자유의 권리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전한 자유의 허용은 말 그대로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또한 그 반대로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무분별한 자유, 즉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어느 정도의 자유는 허용되어야 하지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금지와 이를 어긴 사람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상당한 자유성을 누리는 동시에 사회 공동체의 혼란을 줄이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왔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욕구를 이루는 과정은 왜 항상 타인의 피해를 전제해야 하는가? 그와 반대로 우리의 욕구가 성취될수록 타인의 욕구가 함께 충족될 수 있다면 ‘자유’의 본래 개념,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전적 의미의 개념 성취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25)

이사야가 바라본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나라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 곳이었다. 그럼 이는 육식 동물에게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금지시킴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사야가 말한 그림에서 나오는 모든 동물들은 말 그대로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통해 행동한다. 이리는 스스로 어린 양과 함께 먹기를 결정하고 사자는 스스로 소와 같이 집을 먹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유의 제한을 통해 이룬 평화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스스로를 절제하고 제한하는 것에 사용하기로 결정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참된 자유는 어떤 제재나 금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자유의 권한을 가지고 자신의 위험하고 더럽고 불쾌한 욕망과 싸우기로 결정하는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의 것을 내 마음대로 빼앗는 것도 자유겠지만 그런 내 욕망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도 내 자유이다. 그래서 성경은 자유란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진리를 깨달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라고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지금 우리는 내게 주어진 자유의 권리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는가? 그 결정에 따라 자유는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한 위험한 도구가 되기도 할 것이요, 그와 반대로 내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의 진정한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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