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라 했던가. 흥청거리던 시장통 끄트머리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덕산 양조장’이다. 근대 주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등록문화재 제58호로 등록되어 있다. 오래된 문패에서 세월의 길이를 가늠해 본다. 깊게 뿌리 내린 이력이 읽힌다.

문턱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던 문객들의 발길이 뜸해 보인다. 충북혁신도시에 밀려나 있는 구도심의 전형을 보듯, 건물에 드리운 그늘이 왠지 허허롭다. 가업으로서의 대물림이 멈추었다는 소식 때문에 잠시 내 기분이 애상에 젖은 탓인지 모른다.

삼대에 걸친 대물림을 자랑하던 명성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바뀐 주인장이 그 맛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을 비껴갈 수 없다면 또 다른 의미로 가꾸어가야 함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못이리라.

덕산 양조장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거저 된 것이 아니다. 3대에 걸쳐 전통을 이어온 장인으로서의 정성스러운 손맛도 있었겠지만, 건물도 한 몫을 크게 한 것으로 본다. 일본인에 의해 설계되어 1930년 완성된 독특한 목조 건물이다. 당시 양조장의 전형적인 본 모습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어 등록문화재로 선정되었을 터이다. 백두산의 전나무와 삼나무를 썼다는 점도 눈 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붕은 삼각형 벽이 있는 모양을 한 팔작에, 철과 아연을 입힌 강철판을 얹었다. 벽은 수수깡을 엮어 흙으로 바른 다음 나무판을 대어 마무리하면서, 벽체와 천장 등 건물 중간중간에 톱밥을 깔아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도록 했 다. 창을 높이 두어 안팎의 공기가 잘 통하도록 구조가 이루어져 있다. 이 얼마나 과학적인가.

서향의 정문 앞으로 측백나무가 지붕보다 키를 높여 일렬로 서 있다. 어두운색 건물 앞에 키 큰 나무 여러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보기에는 다소 우중충한 느낌이 들었는데 여기에도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한여름 뜨거운 햇빛을 막아 건물을 시원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측백나무는 특유의 향으로 해로운 균의 번식을 막고, 나무에서 날아든 진액이 건물 외벽에 달라붙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막걸리의 역사를 짚어본다. 거른 술, 막걸리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고유의 술 중의 하나다. 배꽃 필 때 누룩을 만들었다 해서 이화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운치가 느껴진다.

배꽃 흩날리는 날이면 환희산 자락에 누워 있는 정철 선생이 벌떡 일어나 이화주를 즐겼을 터이다. 양은대접 철철 넘게 꽃잎 띄워 마시며 파란만장했던 당신의 삶을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으리라. 그의 시 ‘장진주사’ 한 구절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흩뿌리며 무진무진 먹세 그려’ 세상사 아옹다웅 다투지 말고 자연의 순리대로 더분더분 살아가란 말인가.

자연과 소통하는 술도가에 이르니 술지게미에 허기를 달래면서도 여유와 정이 넘치던 때가 그리워진다. 익어가는 사람 냄새가 그리운 게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