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마애여래불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마애불(磨崖佛)은 절벽의 바위 면이나 커다란 자연의 암벽 단면에 선각 또는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새겨 놓은 것을 말한다. 인도의 석굴사원으로부터 유래했지만, 우리나라 마애불은 화강암 절벽이나 바위에 주로 새겨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조각된 부처님을 보면 종교를 떠나 하나의 예술품을 만나는 느낌이다.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정교하면 그대로 시대의 흐름을 짚어낼 수 있는 조각 작품이다.

나지막한 매산 자락을 타고 앉은 작은 암자에 이르렀다. 성림사다. 40여 년 전 수풀 속에 싸여 있던 석불이 발견되면서 1979년 법당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일주문도 없이 소박하다. 앞마당 널찍한 여느 한옥을 연상시킨다. 절 마당에서 스님 한 분을 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절이라 할 수도 없었다 한다. 토굴 형태를 이루고 있어 조금씩 터를 닦고 다듬어 겨우 지금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신다.

먼저 대웅전을 돌아 나와 오른쪽에 있는 극락전으로 향했다. 마애여래불상을 보기 위해서다. 마애불은 뒤쪽 자락을 타고 산으로 연결되어 있고, 커다란 바위 한 면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밖에서 보면 옆모습만을 볼 수 있다. 앞면을 보기 위해서는 극락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불상 앞으로 극락전을 바로 연이어 지었기 때문이다. 극락전으로 들어서면 뒷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 있는 불상의 앞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연 그대로의 바위에 조각된 불상은 자연인 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햇빛과 바람이 적절히 통해야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 돌도 자연물로서의 생명체로 본 것일 게다. 양쪽 측면은 비껴가는 자연의 바람과 통하고, 앞면은 극락전의 뒷벽, 통유리창을 통해 풍화와 마모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해 놓았다. 과학적인 이론이 녹아 있으면서 특이한 구조가 눈길을 끈다.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큰 불상이다. 퉁퉁하고 우람한 용모에 비해 얼굴 크기는 작은 편이다. 관모를 썼다. 크고 길게 늘어진 귀는 전형적인 부처님 귀다. 세상 만인의 이야기에 다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인가. 눈은 마모되어 눈동자를 구분할 수 없었고, 코는 아예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떨어져 나갔다.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인지도 모른다.

머리 위로 삼구(三軀)의 화불(化佛)을 연 줄기 무늬 위에 배치한 독특한 형식이라 하는데 스님의 설명이 없었으면 나 같은 뚝눈으로는 구별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듯이 심안이 얕은 탓일 게다. 넓은 어깨에 걸쳐 있는 통견의(通絹衣)에 주름이 선명하다. 오른손과 왼손은 손가락을 접어 모두 가슴께로 끌어 올리고 있다. 후덕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돌의 이미지도 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절집을 지키며 불심이 스며들어서 인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지만, 생명체를 지닌 것이든 무생물로 존재하는 것이든 바라보는 관점에서 달리 보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온기가 흐르는 사회가 된다.’ 마애여래불께서 무언의 메시지를 미소로 보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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