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예로부터 인간은 한 곳에 안정되게 정착하는 삶을 구현해왔는가 하면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미지의 장소를 탐험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꿈을 실현해왔다. 노마드(nomad)는 가축이 먹을 만한 물과 풀밭을 찾아 주기적으로 떠돌아다니며 사는 삶이나 이러한 삶을 사는 민족을 의미한다.

 
노마드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저서 '차이와 반복Difference et repetition'(1968)에서 리트레가 창안한 '노마디즘'을 언급하면서 소개하였고 이후 들뢰즈와 과타리는 공저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1980)에서 노마드를 현대 철학 개념으로 체계화한다.
 
들뢰즈는 노마드를 하나의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면서 선을 이루는 '생성의 운동'으로서의 점과 선의 관계로 소개하였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동하면서 떠돌아다니는 방식인 노마드는 언뜻 생각할 때 정착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좀 더 들여다보면 정착과 노마드가 그렇게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노마드는 무조건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지점에서 생산적인 머물기를 하고 난 뒤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기 때문에 이동에는 정착이 전제되어 있으며 노마드는 정착과 이동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들뢰즈는 노마드를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선이 비위계적으로 얽히고 중첩되면서 산포되고 증가되는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수직으로 뻗어가는 나무뿌리와 대비되는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뻗어나가는 '리좀(뿌리줄기)'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20세기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국가 간, 문화 간의 물리적 차원 혹은 가상 차원의 유동성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마디즘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노마드는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디지털 기기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삶의 방식이나 21세기 신인류를 의미한다.
 
물리적 혹은 가상 차원에서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횡단하는 양상을 의미하는 노마드는 더 나아가 삶의 철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들뢰즈는 노마드를 삶과 사유방식에 적용하여 각각의 사유의 개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이동과 연결 방식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성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삶의 태도로 본 것이다.
 
들뢰즈 이후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노마드의 개념을 확장해왔다. 그 대표적인 한 인물인 자크 아탈리는 노마드의 개념을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고 창조해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하였으며 노마드를 단순히 떠도는 유랑의 삶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유방식으로서의 노마드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기존 가치관에 고착되는 것을 탈피하며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로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세상에 참여하며 창조적인 삶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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