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은광연세’는 제주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김만덕 할망의 후손에게 선물한 것으로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지다’라는 의미의 편액이다. 김만덕의 이야기가 잘 알려진 것은 정조대왕 덕분이다. 채제공은 ‘만덕전’을 지었으며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등 유명한 학자들도 김만덕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수많은 충신과 효자, 애국자, 남을 돕는 이타주의자들이 많았지만 유독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은 것은 임금이신 정조가 당대 유능한 학자들에게 만덕의 일대기를 쓰도록 하명했기 때문이다.

‘정조실록’ 등 정사는 물론, 내로라하는 실학자들의 시와 문장으로 만덕의 선행을 남겼으니, 자료의 신뢰성은 그 어떤 역사 전기물보다 맑을 것이다. 더구나 추사 김정희까지 편액을 써서 그의 후손에게 전할 만큼, 당대에 그녀를 모르는 학자가 없을 정도로 기생 출신 김만덕의 선행이 제대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만덕이 전 재산을 털어 굶어 죽어가는 제주민을 구휼한 것만큼 위대한 일이 또 있었다면 제주 목사 유사모가 만덕의 선행을 낱낱이 정조임금에 고하였다는 것이다.

멀리 있는 임금이 어찌 알았겠는가. 제주목사의 보고를 받은 임금이 제대로 평가하고 상을 내려 역사를 기록하게 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제주도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 세계자연유산의 풍광은 물론이고,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올레길과 미술관, 맛집 등 며칠간의 여행으로는 아쉬운 곳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올해 두 번씩이나 김만덕 기념관을 찾았다. 한번은 여성 CEO들과 함께 찾아가서 그녀의 경영철학과 나눔에 대해 집중했고, 두 번째는 유관순 열사의 조카손녀인 유혜경 선생님과 함께 관장님을 만나, 기념관 운영에 대한 설명도 듣고, 규모나 후원자들의 활동에 대해서 부러운 마음으로 경청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 문화전시관 제주 김만덕 기념관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꼭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청년 애국열사이다. 뉴욕타임스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최초로 부고 기사를 낸 것도, 뒤늦게 서훈 1등급으로 격상한 것도, 독립운동가로서 여전히 우리들 마음에 애틋함과 자부심으로 남아있다는 것, 모두가 유관순 열사가 지닌 의미이다.

열사의 법정 기록은 사실에 입각한 기록물이다. 그 기록물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왜 겨우 인도받은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일까? 1919년 독립만세운동 현장에서 열사의 부모가 죽고, 열사도 옥중 사망하고, 열사의 오빠는 옥살이 할 때, 부모를 잃은 어린 남동생들이 그 시대의 반역자로 낙인찍혀 살아온 날들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보살필 수 없었던 이웃들도 어찌 보면 안쓰러운 우리들 선조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록물을 찾아 보전하도록 하고, 우리의 청소년들이 열사의 독립운동정신을 공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인이 죽으면 마을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직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기전에 어떤 기록이든 붙잡아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하다. 천안에 유관순 기념관을 만들고, 열사에 대한 자료가 이 땅의 청소년들 가슴을 울리는 큰 북이 될 수 있도록 정조대왕이 다시 환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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