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무궁화꽃이 만발한 공원으로 들어섰다. ‘두레봉공원’ 이다. 이름부터 정겹다. 딱딱하고 정형화된 느낌의 혁신도시 환경과 대비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공동으로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공동체를 의미한다. 농민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모여 노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둥근 켜로 된 시루떡 덩이를 말한다.

어디 이름뿐인가. 공원을 성곽처럼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등성이가 어릴 적 놀던 뒷동산을 연상시키는 것도 정이 가는 이유 중의 하나다. 푸르름이 물오른 참나무의 숲 사이로 조붓이 나 있는 산책길이 여유롭게 보인다. 혁신이란 미명아래 인근 논밭, 마을이 죄다 불도저 아래 깔아뭉개질 때도 일부 산등성이가 자연 그대로 용케 살아 남아준 것이 고맙다.

등성이 아래쪽에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다. ‘너른 들판’이라 이름 붙은 야외 공연장이다. 그 아래로 층층 돌벽을 한 무궁화 화단을 거쳐 내려오면 아담한 연못이 있다. 생태연못이다. 그 둘레와 사이를 가로질러 놓인 나무 데크 길이 오는 이를 편안하게 맞는다. 한 켠에서 물레방아가 옛 추억을 담아 돌며 물방울을 튕긴다. ‘사오정’ 정자도 점잖게 앉아 잠시 옛 정서에 젖어 보라며 자리를 내준다.

둔덕에 ‘남천’ 마을 표지석이 큼지막이 서 있고, ‘두레지 유래비’가 나란히 서서 이곳이 누군가의 고향마을이었음 알려주고 있다. 남천(藍泉)은 산 중턱에서 조그마한 물줄기가 솟아오른 것을 보고 사람들이 쪽바가지로 샘물을 떠서 식수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온다. 그 후 ‘쪽샘골’이라 불리던 동네다.

두레지 유래비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안골, 앞구레, 쪽샘골, 강당말, 차돌백이, 선옥골, 안말, 원봉, 대월리, 바리목골, 양짓말, 평짓말, 윗돌실, 아랫돌실, 기억에서 멀어져갈 동네 이름이다. 당시 마을 지도와 지명, 거주하던 세대주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사라져가는 마을을 보며 이렇게라도 자신들의 고향, 태어나고 자란 둥지를 기억하고 싶었으리라.

‘이곳 두레봉공원 일원은 충북혁신도시가 조성되기 전에 행정구역상 진천에 속하는 여섯 개의 마을 159세대에 375명이 오순도순 손잡고 살아가던 곳입니다’ 한 자 한 자 새겨진 문구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을 떠나면서 2009년에 유래비를 만들어 세운 그들의 마음이 와 닿는다.

공원 안에 조성된 무궁화가 요즈음 한창 꽃을 피웠다. 100여 일 동안 새 꽃이 무궁하게 피고 진다해서 무궁화(無窮花)다.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냄은 희망과 창조 정신을 의미한다. 풍요와 안녕을 상징하는 태양의 꽃이다. 무궁화꽃이 차 또는 약용으로 쓰인다는 이야기가 다소 생소하지만, 부인과·순환계·피부과 질환을 다스린다고 한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 무궁화가 지금까지 흔히 알려진 사실은 꽃에 벌레가 끼고 안질이나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랜 시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의해 우리 나라꽃 말살 정책 때문이었다. ‘부스럼꽃’이란 말도 그때 나온 말이다.

끈질기게 피고 지는 꽃, 은근과 끈기 우리의 민족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너무 화려하지도, 요사스럽지도 않다. 은은하고 무던해 보인다. 수수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곱다. ‘일편단심’ ‘영원’이라는 꽃말이 꽃의 속성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최근 무궁화꽃에 대한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두레봉공원에 무궁화를 심고 가꿔가는 것은 혁신의 바람 속에서도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600여 그루의 무궁화가 환하게 꽃을 피우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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