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주로 벼락치기였다. 학창 시절에는 날짜가 임박해서야 시험공부를 했고 지금도 원고 마감일이 되어야 겨우 송고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미리 해두면 숨 가쁘지 않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무수하다. 게을러서라고 수없이 나를 질책했고 이 버릇을 고치려고도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미루는 버릇은 여전히 계속되고 노상 성격 탓을 일삼으며 왜 그런지 원인조차 몰랐다.

5월에 방영된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훗날 다시 보기로 보다가 소름이 돋도록 놀랐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 하나가 수십 년 세월 동안 내가 나를 모르는 무지를 일깨워 주어서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신건강의학박사의 말을 대충 옮겨보면 이렇다. “숙제나 일을 미룬다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히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보기엔 게을러 보이지만 본질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것이었구나!’ 했다. 제대로 못 해서, 적당히 해서 창피해질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미루는 것이란다. 나중에 제대로 하려고 계속 워밍업만 하고 있어서, 남들이 봤을 때는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찰랑찰랑한 잠수교 수위처럼 높은 불안과 긴장을 낮추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라고 분석하며 그러므로 ‘벼락치기형 인간’은 사실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는 깊이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이만큼 살도록 내가 왜 이런지 원인을 몰랐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사실을 깨닫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얼마나 자신을 알며 살다가 죽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코앞에 닥치고 나면 오늘 이것을 하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고 비장해진다. 이런 순간이 오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밤샘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단 한 가지에 몰두한다. 지금 안 한다면 나는 아주 무책임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그런 내가 너무도 부끄러워 아침 해를 어찌 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지경이 되고 나서야 주어진 과제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나면 뭔가 결과물도 얻긴 한다.

요즘 언론에서 벼락치기라는 말을 자주 대한다.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공직자 출신을 두고 하는 말인데 정치를 벼락치기 공부 정도로 시작하려는 사람을 넌지시 꼬집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행보할 때마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다 보니 따르는 말인 것 같은데 벼락치기로 살아온 입장에서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아 한 편 안쓰럽다.

심지어 대선 출마를 위해 벼락치기 정치 공부를 하느냐는 의문과 관련, 그의 친구로 알려진 국회의원 모 씨는 머리가 좋고 습득 능력이 뛰어나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니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본인이 진정 원해서 가려는 길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주변인과 공직 생활 중 벌린 일들에 떠밀려 마지 못해 가는 길인 것만 같다.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다가 퇴직 후 노후대책으로 정치인이 되겠다는 건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벼락치기도 가능할 때 시작해야 한다. 수행과 완성이 따라야 하며 결과물이 없을 바엔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한다. 탐욕과 영웅심이 앞서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각종 설화가 안타깝다. 마치 급조된 대안선에서 배와 함께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런 그를 부추기는 자들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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