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한국산학연협회를 맡은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협회에 출근하면 서로를 위하는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다. 오늘 아침은 본 협회 이정례 본부장님께서 임원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주셨다.

외아들을 둔 부자 부부가 자식을 대학 졸업시켜 대졸 며느리를 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시어머니는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를 자주 했고, 며느리는 점점 늘어만 가는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자, “어머니, 대학도 안 나온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잔소리는 그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뒤로는 시어머니가 뭐라 하기만 하면 “대학도 안 나온 주제에 그만 하세요”라고 하니, 며느리 구박받는 처지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며느리가 내가 대학을 안 나왔다고 너무 무시하네요” 그러자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조용히 불러 “시집살이에 고생이 많지? 친정에 가서 오라할 때 까지 푹 쉬거라” 그리하고 친정 간 며느리는 한 달이 지나도 시아버지가 연락이 없자 먼저 연락을 했다. “아버님, 저 돌아가도 되나요?” 시아버지 대답 “아니다. 니 시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면 그때 오도록 하거라”

◇남편 나무

어느 날 남편이라는 나무가 내 옆에 생겼습니다.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주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내가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나무이기는 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불편하게 함으로 날 힘들게 하는 나무가 밉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괜한 짜증과 심술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나무는 시들기 시작했고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심한 태풍과 함께 찾아온 거센 비바람에 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 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가 없어도 충분히 살수 있다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랑을 주지 않으니 쓰러져 버린 나무가 나에겐 얼마나 소중한 지를, 내가 남편 나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이에 나무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늘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다시금 사랑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 나무는 혹시 잎이 마르거나 조금씩 시들진 않는지요? 남편이란 나무는 사랑이란 거름을 먹고 산다는 것을.

◇내년 대선엔 남편 나무를

사실 민초들이란 부인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무시하는 며느리에게 경종을 울려 줄 남편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남편 나무의 그늘에 살고 싶어 한다. 내년 대선엔 남편 나무 같은 분이 선출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의 남편 나무가 시들지 않도록 우리나라의 국력이 쓰러지지 않도록 사랑이란 거름을 실컷 주고 싶다면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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