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오늘도 작은 배낭을 메고 우암산으로 향한다. 하드웨어인 뇌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마음의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하는 코로나19로 모임을 거의 못 하니 우암산 걷기길을 걸을 때가 더 많아진다. 아직 한낮에는 볕이 따갑지만, 남실남실 부는 산들바람에 하늘이 높아지고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솔솔바람이 불어오고 부지런한 고추잠자리가 가을의 문턱이라고 일러준다. 곳곳에서 우암산이라 소〔牛〕가 설명하는 안내판의 글귀처럼 자연과 하나 되고 사람과 교감하는 정겨운 우암산 걷기길이다.

우암산 걷기길의 가파른 곳은 계단을 만들어놓고 야자나무 껍질로 엮은 듯한 멍석을 깔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좋다. 이런 것까지 수입해오다니 우리가 제법 잘사는 것 같다. 잡풀을 깎지 않은 곳이 있어 위험한 곳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정비가 잘 되어 고맙다. 어깨 위로 무언가 떨어져 살펴보니 톱으로 자른 듯한 가느다란 참나무 가지다. ‘바람에 떨어졌을까, 청솔모가 갉았을까?’ 알고 보니 도토리거위벌레가 덜 여문 도토리에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가지에 달린 잎 때문에 천천히 떨어져 안전하고,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라다가 땅속으로 들어가 이듬해에 다시 나와 또 알을 낳고 반복한다니…….

도토리거위벌레의 모성애에 감동하며 걷자니 광덕사에 이르렀다. 마침 목이 마른 김에 샘터에서 물을 한 바가지 들이켜고 주변의 잣뫼쉼터로 온다. 안내판에는 벤치에 앉은 소 모양 캐릭터(character)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잣뫼쉼터의 ‘잣’은 성(城)의 옛말이며, ‘뫼’는 산의 옛말로 이를 풀이하면 ‘산성’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암산은 큰 계곡을 포위한 포곡식의 누에 모양의 산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돌을 쌓아 성곽을 만들어 우암산성을 느껴보고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보는 장소입니다.”

주위에는 실제로 성 쌓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 많은 돌을 비치해 놓았다. 안내판에 “청주의 영문 이니셜인 ‘C’와 ‘J’를 조합해 생명의 시작이나 창조적 가치의 원동력을 의미하는 ‘씨앗’을 상징화한 심볼마크”라는 청주시 마크를 새로 제작하여 덧붙여 놓았다. 마크가 변경되기 전에 제작된 안내판이라서 옛 것 위에 붙인 것을 보고, 기관명이나 상징마크를 자주 변경하면 인력과 예산 낭비 등이 되니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잘 제정하여야 하겠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매사 내실 있게 운영하면 되는데 이름만 바꾼다고 저절로 될까.

소규모이지만 몇 가지 운동기구도 갖추어져 있어 마음에 든다. 특히 누워서 하는 바벨(barbell)을 많이 애용한다. 한쪽이 10kg인데도 묵직하다. 몇십 번 운동하고 휴식할 때 평온하고 달콤하다. 누운 채로 명상에 잠기면 편안하고 온갖 번뇌를 잊고 무루지(無漏智)도 깨닫는 듯하다.

20여 미터 높이의 낙엽송과 참나무 사이와 위로 보이는 세상은 시시각각 바뀌고 요지경(瑤池鏡) 속 같다. 우리만 거리두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나무들도 꼭대기 부분이 상대에게 닿지 않게 수관기피를 하고, 청정한 하늘에 흐르던 흰구름이 먹구름이 되기도 하고, 산새들이 비행하며 정찰도 하고…….

앉아보니 내가 누웠던 나무판자가 무척 좁다는 것에 놀라 손뼘으로 재본다. 폭이 1.5 뼘(한 뼘은 약 19cm), 길이는 7.5뼘밖에 안 되는데, 아무리 종아리 아래는 밖으로 나왔더라도 이 위에서 몸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니……. 우리가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교훈도, 운동 후처럼 업무 후 휴식의 필요성과 행복감도 체화(體化)한 우암산 걷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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