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여름 내내 발악을 하듯 울어 대던 매미 소리도 입추가 되니 기력을 잃어갔다. 지친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슬그머니 가을이 왔다. 지루했던 여름 폭염과 열대야를 그나마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 덕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년이나 연기되었다가 열린 도쿄 올림픽은 그전의 올림픽과는 다르게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치러졌다.

삼삼오오 모여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함성을 지르던 응원은 할 수가 없었지만, 저마다 집에서 가족끼리 조용하게 그러나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여름을 보냈다. 주몽의 후예들이 쏘아 올리는 화살 끝에 시선을 모으고 마음을 졸이면서 환호를 보냈다. 패기 넘치는 앳된 선수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코리아 화이팅!” 그 소리가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긴 가을 장마는 마음을 눅눅하게 했다. 일조량이 부족한 탓인지 몸도 마음도 시들시들해졌다.

그리보면 사람도 지극히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째 햇빛 구경도 하지 못하고 백해무익한 가을비만 연일 내리니까 생기를 잃어갔다. 올림픽이 끝나면서 TV 시청은 무료해졌다. 어린아이들 싸움보다 더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들의 정쟁으로 시끄러웠다. 방송사마다 말 좀 한다는 논객들을 여기저기서 불러 모아 누가 더 말을 잘하나 내기를 하는 듯 논쟁들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예능 프로에 마음이 꽂혔다. 도쿄에서 국위를 선양한 멋진 선수들이 금의환향을 하고 각종 예능프로에 초대를 받았다. 외모가 수려한 그 어떤 연예인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스타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운동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입담도 좋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깊이 있는 삶의 철학과 내공이 쌓여서 표출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감동이 컸다. 어린 나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직 한길만을 걸어온 선수들이다.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들도 많았을 청소년기를 오직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태극마크를 달고 나면 금메달을 위해 선수촌에서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으로 보냈을 그들의 고독한 시간이 위대해 보였다.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업어치기 성공으로 멋지게 동메달을 거머쥔 유도선수 안창림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 어떤 금메달보다도 그의 목에 걸린 동메달은 값지고 빛났다. 순수한 인상에 훈남인 28세 청년 안창림 선수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의 삶의 족적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유도복 끈을 풀어 헤치고 땀에 젖은 그의 사진을 몇 장 캡처해서 보관하고 아들에게도 전송해줬다. 엄마가 빠져있다는 남자의 사진을 보고 아들은 웃었다. 브로마이드 사진을 구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거였다.

제일교포 3세인 그는 할아버지 대부터 귀화하지 않고 일본 이름도 짓지 않고 살았다. 일본에서 대학 재학 중 일본 국적이 없는 그가 많은 경기에 출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용인대학으로 편입을 했다.

유도의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귀화해서 일본 선수로 활동할 것을 종용했으나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다. 조부모들이 힘들게 지켜온 국적을 꼭 지키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우리나라에 와서는 쪽바리로 놀림을 받으며 어디서나 힘들었지만 그의 투혼은 꺾이질 않았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서 삶의 애환이 많았을 그곳 일본 도쿄에서의 멋진 쾌거였다. 그의 가슴에 태극마크와 동메달은 그 어떤 금메달보다 자랑스럽고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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