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추석을 앞두고 우려되던 제14호 태풍 찬투(CHANTHU)는 다행히 한반도 내륙을 비켜 일본으로 건너가 소멸되었다. ‘찬투’는 캄보디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꽃의 한 종류답게 피해가 없었으면 했는데, 오랜 시간 제주 남해상에 머물면서 큰 어려움을 남겨 안타깝다. 요즘은 언제 태풍이 있었느냐는 듯 하늘이 더없이 높고 푸르고 두둥실 뭉게구름이 풍요롭게 노니며 추석맞이를 한다.

백신 1차 접종자는 3천600만 4천101명으로 전 국민의 70.1%가 1회 이상 백신을 맞았다고 한다(9월 17일 오후 5시 기준). 지난 2월 26일 접종 시작 이후 204일 만에 1차 접종률 70%를 돌파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추석맞이를 한다. 코로나19 걱정 없이 고향 등을 찾아 마음 놓고 추석 명절을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코로나19 속의 두 번째 추석이지만 지난해보다 더 걱정스럽다. 여느 해 같았으면 기차표 예매를 해서 부산을 다녀와야 하지만 못 가게 되어 착잡하다. 문득 오래전 예매를 하던 생각이 난다. 조치원보다는 신탄진역이 근무지와 가까워 새벽에 승용차를 타고 현장에 가서 길게 줄을 서서 어렵게 예매하고 출근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해서 무척 편리하다. 하기야 ‘정부24’에서 주민등·초본 등을 가정에서 야간에도 발급받는 때이다.

추석을 지난 후 옥상 방수공사 등을 할 계획이라 우선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태풍이 몰고 온 비가 내릴 때 옥상과 계단 물청소를 하니 안성맞춤이다. 바싹 말라 여간해서 닦이지 않던 곳이 퉁퉁 불어 잘 닦이고 물 절약도 되니 일거양득이다. 밖에서 흠뻑 비를 맞은 승용차도 몇 번 문지르니 말끔하다. 때로는 우의(雨衣)를 입고 작업하는 불편쯤은 감수해야 하지만.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안팎 곳곳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하자.’ 하며 자기변명으로 합리화하며 미루어 온 탓이다. 또 게으름을 피울까 봐 언젠가 책에서 읽은, “미룬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하나의 행동을 할 때 108개의 핑계가 생겨난다.”란 명언으로 채찍질하며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서재의 책상 서랍부터 빼서 바닥에 쏟고 담으며, 필통과 튼튼한 상자들을 서랍에 넣고 정리하니 한결 편리하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내친김에 옥상에 있는 창고의 물건도 모두 꺼내놓았다. ‘이런 것은 보관하지 않아도 했는데.’ , ‘이건 언제 어디에 쓰던 물건일까.’ 막내아들이 불혹(不惑)이 넘었는데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쓰던 물건까지 있지 않은가.

용도에 맞는 쓰레기봉투를 사다가 웬만한 것은 과감하게 담아 버리고 비우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늙음의 미학(美學) 제1장은 ‘비움의 미학’이라 한다. 비움의 실천은 버림으로써 동양화처럼 여백을 만들고 ‘나눔’을 실천할 수도 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성취의 청춘도 아름답지만, 비움의 노년은 더욱 아름답다. 주먹을 쥐고 태어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요, 손바닥을 펴고 죽는 것은 모든 소유로부터의 비움이다. 항아리의 물도 비운 만큼만 채울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대청소를 하며 체득한 교훈이다. ‘집지양개(執之兩個) 방즉우주(放則宇宙)’란 말도 되새겨본다. 두 손으로 잡아보았자 두 개뿐이요, 놓으면 우주가 온통 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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