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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만약 우리가 어린 자식을 교육할 기회가 있다면 늘 손해를 보면서 살라고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손해 보는 일을 주의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손해 보는 일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손해가 날 일을 미리 분별하여 그 일을 피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 어느 누가 손해 보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이 장차 자신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더욱 노력하여 손해를 보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이는 단순히 사리가 밝지 않거나 계산 능력이 남들보다 빠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손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거의 예외 없이 부모들은 아이의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그 삶의 목표가 마치 늘 손해를 보기 위한 것처럼 여겨진다.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행한 기적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한 혼인잔치에 참석을 했다. 그런데 잔치가 한창일 때에 준비한 포도주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인들을 시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한 뒤 그 물을 그대로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주라고 말한다.

하인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예수님이 시키는대로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손님들은 깜짝 놀라면서 보통은 최상급 포도주를 먼저 내어주고 사람들이 흥에 겨울 때에 좀 낮은 질의 포도주를 내오는 법인데 이 집 주인은 가장 좋은 포도주를 이제야 나누어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목이 마른다고 하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 포도주는’ 물이나 향료를 포도주와 섞어 만든 음료로 당시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주로 마시던 것이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기록을 그대로 따르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내어 주었는데 사람들은 목이 마른 예수님을 위해 고작 신 포도주 밖에는 대접할 것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았던 십자가의 길은 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길’이었다. 예수님은 어떤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목표를 다 이루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손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서도 그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이런 예수님의 삶은 손해를 보는 삶이었기에 불행하고 고통과 슬픔만이 가득한 인생이었는가?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동정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의 삶을 배우고 닮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복잡할지 모른다. 단순한 계산으로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익으로 보이는 일들이 오히려 내게 해가 되거나 손해라고 여겨지는 일이 오히려 내게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어떤 지식이나 이론을 가지고 꿰뚫어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이면의 세계에는 더욱 깊고 복잡한 이치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혜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이치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더욱 확신할 수 있는 용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고백하는 순간 무엇이 유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던 지금까지의 기준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상황은 지난날 우리가 누리던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보이지 않는 유익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는 바로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코로나 상황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인생의 참된 유익을 발견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손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유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순간,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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