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한 사람이 성공하거나 성공하지 못 하는 모든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고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정교한 질서 속에 존재하는 우주에서 균형을 잃는다는 것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책임은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나약함이나 강인함, 순수함이나 순수하지 못함은 그 사람의 것이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 사람 자신에 의해 그 사람에게 존재하게 된 것이지 다른 사람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그 자신에 의해서만 달라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결코 달라질 수 없다. 그의 상황 또한 그 자신의 것이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의 고통, 그의 행복은 모두 그의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생각하므로 그는 존재한다. 생각을 계속하므로 그는 계속 존재한다.

약한 사람이 기꺼이 도움을 받고자 하지 않는 한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울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약한 사람은 또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스스로 노력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보고 존경하는 힘을 개발해야 한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의 압제자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노예 노릇을 한다. 그러니 그 압제자를 증오하자”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반대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예 노릇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압제자가 생긴다. 그러니 노예들을 경멸하라”

그러나 사실은 압제자와 노예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지식은 압제받는 사람들의 나약함과 압제자의 그릇되게 사용되는 힘 사이에 이러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완벽한 사랑은 양자(兩者)모두의 고통을 보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완벽한 동정은 압제자와 피 압제자를 모두 품에 안는다. 나약함을 정복하고 이기적인 모든 생각을 떨쳐버린 사람은 압제자에도 피 압제자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움직일 줄 알아야 일어서고 정복하고 성취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그 사람은 나약하고 무력하고 비참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세속적인 것이라 해도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게 되려면 노예적이고 동물적인 탐닉으로부터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동물적인 모든 욕망과 모든 이기심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 일부분은 희생을 해야만 한다. 처음부터 동물적 탐닉에 빠진 사람은 명확하게 생각할 수도 없으며 조직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방할 수 없으며 조직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방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일에도 실패할 것이다. 용감하게 생각을 자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일을 담당하고 중요한 책임을 맡을 위치에 서지 못한다. 그는 혼자 서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신이 선택한 생각에 의해 그러한 제한을 받는 것이다.

희생 없이는 어떠한 발전도 어떠한 성취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세속적 성공은 그가 자신의 동물적인 생각을 희생하고 자신의 계획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의 의지와 독립심을 강화시킴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높게 끌어 올릴수록 그는 더 용감하고 꿋꿋하여 정의로워지고 그의 성공은 더욱 확고해지며 그의 업적은 더욱 축복스럽고 생명력이 긴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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