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칼럼] 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아침 해가 밝게 솟아오르고 하늘이 높고 푸르다. 결혼 초에 고향이신 영동에서 교장을 하시며 교육계의 원로이셨던 장인께서 과수원을 갖고 계셔서 감나무 하나를  청주의 봉명동으로 가져와  25년을 살다보니 감나무집으로 불리었고 한가한 마음으로 정원의 감을 따기로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붉고 소담스런 홍시를 따다보니 노계(蘆溪) 박인로의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이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기리 얼슬새 글로 설어하나이다"라는 시(詩)가 생각났다. 

이 시는 박인로가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홍시 대접을 받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회귤고사(懷橘故事)를 인용하여 지은 시이다. 오(吳)의 육적이 여섯 살 때 원술의 집에 찾아가자 귤 대접을 받고 그 중에 세 개를 몰래 품에 품었는데, 하직 인사를 할 때, 그것이 굴러 나와 발각되었다. 이에 원술이 그 까닭을 물으니, 집에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드리려 했다 하니 모두 그 효심에 감동했다는 일화가 회귤고사이다. 

 23년 전 가을, 어머님께서는 8개월에 걸친 투병생활에 저희 7남매를 남겨두고 떠나셨다. 

공자는 3000가지 죄악 중에 불효(不孝)가 가장 큰 죄라 했고, 시경(詩經)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국자은(生鞠之恩)이라고 하며, 불경의 부모은중경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로 10가지를 들고 있다. 어머니가 출산을 할 때에 3말 8되의 피를 쏟고 기르는 동안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하지 않는가.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천번 돌아도 갚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라고 했다. 

페스탈로치는 '가정은 도덕의 학교'라고 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효는 백가지 행실의 근본이라고 했고, 효경에 "나무는 고요하고자하나 바람이 그치지를 아니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아니한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글이 생각났다.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인생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라고도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슬픔 속에 어머님을 작별해야했다.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을 때, 하루는 북어찜을 찾으셨다. 다른 음식은 마다하셨는데 북어찜을 맛있게 잡수셨다. 매월 몇 차례씩 단골 식당에 가면 북어찜을 자주 내놓는다. 북어찜을 보게되면 어머님 생각에 목이 메이고 살아 계셨을 때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가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가슴을 치게 했다.

아버지께서는 젊으셨을 때 유도를 하셨고 체격이 건장하셨다. 모시고 식당엘 가면 식사를 잘 하셨다. 고희를 지나셔도 성묘를 가실 때면 앞서서 올라 가셨는데 80이 넘으시어 오르실 때는 힘들어 하시고 식당에 모시고 가면 반도 잡수시지 못 하심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는데 15년 전에 저희들을 두고 떠나셨다. 얼마 전 고향집에 들렸다. "죽으면 썩을 살을 아끼면 무엇 하느냐"시며 밤을 낮 삼아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셨든 어머님, 금방이라도 나오시며 반색하시며 아들의 손을 잡아 주실 듯 했지만, 텅 빈 옛집엔 낯선 사람들이 오가며 푸르던 대추나무는 돌보는이 없이 고목이 되어 우리를 맞는다. 

덧없는 게 세월이요 기약 없는 인생살이, 7남매를 키우시며 공직을 사직하신 후 밤을 낮삼아 자수성가하신 부모님, 이제 그동안 못 다하신 말씀 나누시며 편히 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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