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요즘 나무를 바라보며 늦가을을 즐긴다. 너무 찬란한 단풍을 바라보기보다 땅에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낙엽이 어디를 출발하여 어떻게 떨어지나 위를 바라보다 의연한 나뭇가지를 목도하고 흠칫 놀란다. 나무는 뿌리를 땅속에 감추고 서 있지만 가지는 오롯이 하늘 향해 멈춤없이 자라고, 하늘 바라기가 되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만 나무에게 허리를 굽힌다. 땅에 있지만 하늘과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 초록을 고집하지 않고 가을이 들면 단풍옷으로 갈아입는 슬기로움! 몸이 춥더라도 하나 둘 잎을 아래로 내려 제 뿌리를 덮는다.

가을 나무들이 저마다 열매를 내놓을 때 사람인 나는 ‘가을이 부끄럽다’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밤, 대추, 도토리 그리고 아기 사과나무는 그 열매로 제 존재를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친다. 이제 나무를 보노라면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함 나아가 작은 두려움을 안게도 된다. 가을 바람 불 때 나무를 바라보라, 나무는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장군처럼 한 점 두려움 없이 바람에 맞선다. 아니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인내를 뿌리까지 내리고 있다. 이젠 나무가 사람을 지키고 나아가 키우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사진작가가 보호수만 촬영하여 전시회를 열었다. 보호수라 하여 다소 생소했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 속에서 몸을 지켜온 나무 이력이 살아 숨 쉰다. 무엇보다 아름드리 나무 기둥 줄기의 형세가 동물의 움직임처럼 예술작품이다. 전시된 사진을 살펴보니 엄나무, 소나무도 있지만 보호수의 대부분을 느티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오래된 느티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여겨 왔음이다. 가지가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어 그늘이 많아 정자 근처에 많이 심었기 때문일까? 느티나무는 온갖 어려움을 참아내며 마을을 지키고 그곳에 사는 사람을 지키고 하늘을 섬겨온 것이 분명하다. 새삼 느티나무의 의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고향 진천 백곡 석현리에도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지곡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느티나무가 큰 바위 얼굴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 표암 강세황 미술대전이 생거판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보러 갔다가 그곳에 다시 가 보았다. 멀리서도 가을을 맞아 단풍 든 누런 도포를 입은 듯 정답다. 나무 아래 세워 놓은 안내판을 다시 보니 수령 800년이나 넘어 보호수로 정해 놓았다. 특이한 것은 평지에 있지 않고 돌 바위 언덕에 네 개의 큰 가지를 틀어박고 자라고 있으니 한 마리 거대한 용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느티 아래에 와 꿈을 키우고 개구쟁이 시절을 보낸 그 날이 눈에 어른거린다. 바람 타고 떨어져 내린 수북한 느티나무 잎 중에 세 개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본다. 향내도 맡아본다.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를 달고 있어 날카로워 보여도 봄에는 어린 잎을 떡에 섞어 쪄서 먹기도 한다니 느티나무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

가을엔 여기저기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잎들이 사람의 길을 덮고 있다. 자연과의 공존이다. 공원을 걷다가도 한 곳에 치우쳐있는 낙엽을 살짝 밟으며 또 위를 한참 올려다본다. 줄기들은 잎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제 길 따라 의연하게 퍼져 나간다. 나무는 가을마다 이런 편지를 쓴다.

“내 잎이 다 떨어져도 슬프지 않아요/가지마다 하늘을 더 잘 볼 수 있어요 내 꿈은 저 하늘 구름과 춤추는 거여요/ 내년 새봄엔 초록빛 새 옷 보여드 리고 싶어요”

매일 가을나무 편지를 받아 읽으며 2021 가을도 행복하게 떠나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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