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인생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되게 사는 것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이와 같은 의문을 가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 출세하고 싶은 사람,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이 모두를 성취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천(天) 인(人) 지(地)의 숭고한 정신문화에 있다.

우리 조상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도덕관과 윤리관, 참된 이성의 가치관이 현대에 와서는 이미 퇴색될 대로 퇴색되고 오염될 대로 오염돼 “과학과 물질문명의 승리를 노래하는 오늘날 정신문화가 과연 무슨 구실을 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대는 변해도 자연은 자연으로, 사람은 사람으로서 그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옛 성현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산산수수가관(山山水水嘉觀)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는 곧 산은 산으로서 물은 물로서 모두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육신(肉身)은 있어도 정신(精神)을 빼앗긴 위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나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그야말로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친구 간에 신의가 버림 받은 지 이미 오래다. 가정의 예는 물론 스승과 제자의 도, 사회나 국가관이 절름발이가 된지 오래란 얘기다.

아무리 많은 제물과 높은 권력을 가졌고 좋은 학문, 좋은 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 사회와 국가, 후손들을 위해 참되게 쓰여 지지 않으면 이것이야 말로 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참된 정신문화를 찾아야 할 때이다. 정신문화의 회복이 없고서는 나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 후손들까지도 고난과 역경 속에 혼탁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상대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상대가 있는 것이다.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라 하지 않는가.

사람 인(人)자를 보라. 서로 의지하고 기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살고 상대는 죽어도 된다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이미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하늘이 있어 땅이 있고 땅이 있어 하늘이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네 인간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의지하며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 우주의 자연 법칙과 인간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으로 불렀고 땅의 도를 세워 강, 유라 불렀고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 불렀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과 땅, 사람의 도를 소중히 여겨 지키고 따름으로써 제 할 일을 다 하고 이치를 구명해 본성을 다하며 하늘의 명에 이르러야 될 줄 안다. 물질문명과 문화가 제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올바른 정신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무질서와 파괴의 연속일 뿐이다.

하루속히 참된 인간성 회복의 실천운동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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