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내년 3월에 실시될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뽑을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 비전이나 윤리관에 부합하는 후보가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비전이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꿈이 있어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게 된다. 비전은 그래서 사람이나 사회 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자들이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불행한 현실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후보자들이 선거운동과정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내보내기보다는 부정의 메시지를 더 많이 내보낸다고 한다. 선거 때마다 우리 사회가 저급한 말들로 물들고 혼탁해지는 것에 대중들도 이제는 무덤덤하다. 사회의 공기(公器)로 자처하는 언론 역시 정화작용을 하기 보다는 이런 혼탁함에 한술 더 떠서 신념이 다른 후보자들을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데만 열을 올린다. 가뜩이나 코로나19와 금리인상 등이 뒤섞여 뒤숭숭한 선거판에 서민들의 가슴에는 꿈과 희망 대신 낙담과 분노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나 언론의 편에서 보면 국민들도 문제는 있다. 정치인들이 공정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면 오히려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언론이 선정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잘 팔리지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장기비전을 품고 인내하며 살기보다는 당장의 자극이나 시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비판이 아닌가?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했듯이 당장의 자극에 의해 반응하는 본능적 삶보다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간다운 삶이 정신과 문화를 더 탄탄하게 만든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은 차분하게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사회발전을 위한 장기비전을 만들어내고 가꿔가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비전들은 참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한 주요 이유는 정치인들이 비전 제시를 문제해결을 위한 1회성 행사로 여기고 취급했기 때문이다. 일단 만들어진 비전이 달성되려면 그것이 늘 살아서 움직이도록 제도를 고치고 비전 추진단을 구성하여 수행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 평가와 같은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것이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고 비전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또한 선거에 맞춰 내놓는 비전이 국민 개개인의 삶의 목표와 욕구에 기반을 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머리 좋다는 몇몇 사람들이 만든 비전, 또 인기에만 영합하는 비전은 국가의 장기적 자산을 훼손하기 때문에 비전이 아니라 곰팡이에 불과하다.

비전은 조직이나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 대중들이 그것을 진정 바람직한 것으로 동의하고 정신체계 속에 내재화해야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전체 대중의 가슴에 스며들지 못하는 비전은 정파적 이념에 불과하고, 이것은 집권 내내 반대편 집단에 스트레스만 주게 된다. 현대 한국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희망의 미래를 향한 공통의 장기비전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각자도생의 약육강식만이 생존원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드는 미래의 공통 비전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대통령 후보자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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