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설 명절이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여전히 사람끼리 거리두기를 요구한다. 주춤하면서도 귀성인파가 길거리를 메운다.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온 우리네 전통풍습과 정 문화의 바람을 어쩌랴.

밤새 하얀 손님이 나붓나붓 발걸음을 하셨다. 하늘에서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는 거다. 서설인가? 이번 설 명절을 끝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깨끗이 덮고 싶은가 보다. 남편이 자동차위 눈을 쓸러 나간 사이 큰아주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올해는 모이지 말자 하신다. 큰댁이 청주이다 보니 늘 명절날 당일 새벽에 출발하곤 했는데 그냥 눌러앉아 뒹굴거리다 집을 나섰다. 몇 년 만에 새해 첫 명절날 찾아온 손님을 혼자 머물다 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집 가까이 사람이 적게 갈만한 곳을 찾아 길을 잡았다. 부러 눈길을 골라 발을 디뎠다. 발밑에서 뽀득뽀득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밀어 올린다.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진천문학공원으로 방향을 잡아 남산골 옷샘으로 난 샛길로 향했다.

옛 숭렬사가 있던 자리에 이르렀다. 보재 이상설 선생의 사당이 있던 곳이다. 사당이 탄생지로 옮겨간 이후 휭하니 바람이 휘돌더니 어느 틈엔가 운동기구가 들어서 있다. 주인 없이 저들끼리 두런두런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듯싶다. 설날이라 그런가. 설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즐겨 찾을만한 분위가 아니다. 격정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다간 보재 선생의 뒷모습을 보는듯하다. 등성이 넘어 옷샘을 찾았다. 물이끼를 잔뜩 머금고 혼자 쫄쫄댄다. 문명의 이기가 들어차면서 자연스러운 정취를 잃었다. 아위움을 안고 화랑공원으로 들어섰다. 몇몇 아이들이 부모님과 어울려 눈장난을 치며 언덕배기에서 미끄럼을 탄다. 우스꽝스러운 눈사람도 저를 보아 달라고 손짓을 한다.

그래, 눈만이 예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주셨구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을 골라 디디며 한 바퀴 돌아 다시 문학공원이다. 보재 선생의 삼읍시가 선생의 신산했던 삶은 독백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DNA가 흐르고 있음을 이렇듯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재 선생이 어떤 분인가. 구한말 마지막 과거급제자요 신구학문에 통달한 교육자이며 조국 독립을 위해 몸 바친 분이 아닌가. 1906년 중국 용정에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세운 분이다. 지금 그가 태어난 고향, 충북혁신도시에 선생의 정신을 잇고 있는 곳이 있다. 서전고등학교다.

‘상서로운 배움의 전당’ 서전서숙의 맥을 잇는 서전고등학교는 2017년 문을 열었다. 용정의 서전서숙이 폐교된 지 111년 만의 일이다. 교문을 들어서면 체육관 벽 한 면에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황제의 밀서가 큼지막이 금빛으로 빛난다.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찍힌 황제의 어새가 화룡점정이다. 고종황제가 가장 신임한 신하가 이상설이다.

체육관 앞 잔디밭에 실물 크기의 선생의 동상이 있다.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청동좌상이다.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한이 서려서일까. 왠지 왜소하고 슬픔이 묻어나는 촌로의 모습이다. 숭렬사 앞에 우뚝 서 있는 동상, 학문의 대가, 외교적 특사답게 왼손에는 문서를 말아 쥐고,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 있는 당당하고도 위엄 있는 모습과는 딴판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교육이 미래다” 그 정신 하나로 동저고리 바람으로 돌 위에 앉아 교정을 지키는 선생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누군가 따듯한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선생의 정신이 가슴으로 스며든 때문이리라. 설날 아침에 내린 눈은 난국 극복을 암시한 서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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